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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27개 종단 “종교차별 금지법 만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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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러러 고합니다…서울광장의 청정한 도량에서 우리 모두가 지극한 정성으로 종교차별 금지법 제정을 바라옵니다…국론을 분열하는 선교 정치가 소멸되게 하시고 정치·종교 분리의 헌법 정신이 지켜지게 하옵소서.”

27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범불교도 대회에 참가한 스님들이 합장을 하고 있다. 이날 집회를 마친 스님과 불교 신도들은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까지 시가행진을 했다. [김성룡 기자]

27일 오후 2시 서울시청 앞 광장. 무대에 오른 홍파 스님(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이 ‘고불문(告佛文)’을 낭독했다. 조계종 등 불교계 27개 종단이 주최한 ‘헌법수호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글이다. 광장과 주변 도로를 가득 메운 승려·신자들 총 6만 명(경찰 추산, 주최 측 20만 명)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했다.

◇‘종교 편향’에 쓴소리 이어져=대회는 종을 다섯 번 울리는 ‘명종’ 의식과 예불로 시작됐다. 같은 시각에 맞춰 전국 주요 사찰에선 범종을 33번 타종했다. 무대 뒤엔 석가모니와 보살을 담은 대형 탱화가 걸렸다. 좌우엔 악귀를 쫓는다는 뜻을 담은 사천왕과 금강역사가 섰다.

단상 앞쪽엔 회색 승복을 입은 스님 1만 명이 자리를 잡았다. 신자들도 교구별로 팻말 주위에 모였다. 몰려든 인파로 행사장인 서울광장뿐 아니라 소공로·태평로 일대까지 가득 찼다. 서울의 봉은사·화계사를 비롯해 양산 통도사, 속리산 법주사, 구례 화엄사, 경주 불국사 등 대형 사찰에서 단체로 온 이들이 많았다.

연단에 오른 종단과 단체 대표들은 대통령과 정부를 규탄했다. 수경 스님(화계사 주지)은 “정부는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룬 민주주의의 성과에 무임승차한 채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현 스님(태고종)도 “제대로 된 정책 기조가 없다 보니 쇠고기 수입 협상, 영토 문제, 고유가 대책, 국회를 통한 해결책 마련 등 국내외 현안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들에게 드리는 글’을 낭독한 경천 스님(천태종)은 “고위 공무원들이 재채기를 하면 하위 공무원들은 감기에 걸린다”며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예배를 올리는데 동사무소가 알아서 십자가를 걸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종교간대화위원장인 김광준 신부(대한성공회)는 연대사에서 “최근 불교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장경동 목사 등 종교 편향 사례들에 마음이 무겁다.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사죄드린다”고 밝혀 청중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성의 있는 조치가 없을 경우 지역별 범불교대회로 항거를 확산할 것이며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더욱 강도 높은 범국민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회 상임봉행위원장 원학 스님은 전날 “대회 이후에도 정부가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추석이 지난 후 영남권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범불교도 대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었다.

◇2만 명 조계사까지 거리 행진=오후 4시 대회를 마친 뒤 참가자 2만 명은 조계사 입구까지 거리 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불자들의 힘으로 종교차별 막아내자’ ‘대한민국 정부는 선교의 도구가 아니다’ ‘경찰복음 앞장서는 어청수는 사퇴하라’ 등의 현수막·만장·카드를 들었다. 조계사 입구에서 정리 집회를 한 참가자들은 오후 5시30분쯤 해산했다. 이날 경찰은 전·의경, 경찰관기동대 대신 교통경찰을 전면에 배치했다. 경찰과 행진 대열의 충돌은 없었다.

한때 대열 뒤편에 다음 아고라 회원 등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를 벌여온 500여 명이 합류했다. 경찰은 “불교계 행진 대열에서 떨어지라”고 경고방송을 했다. 이들 시위대는 불교계 행사가 마무리된 이후 인사동 입구로 이동해 민주노동당이 주최하는 ‘공안탄압 규탄’ 집회에 동참한 뒤 오후 7시40분쯤 해산했다.

이충형·강기헌·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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