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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빛’ 아시아 미술시장 ① 베이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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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400여개의 화랑이 들어선 중국 베이징 시내의 대표 예술촌 다산쯔의 거리 조형물. 이곳은 올림픽 기간 중 베이징 6대 중점관광지구의 하나로 선정됐다. [중앙포토]

세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도 미술시장은 여전히 순항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예술품 경매사 크리스티의 올 상반기 판매 실적은 35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늘었다. 그 견인차는 중국·중동 등 아시아 신흥 부호들이라고 크리스티는 분석했다. 올림픽 특수를 이어가려는 중국, 이를 바짝 쫓는 인도, 석유 재벌들이 이끄는 러시아와 두바이 등이다. 미술시장통인 강남대 서진수(경제학) 교수가 이들 아시아 신흥 미술시장의 생생한 소식을 전한다.

 ◇‘미술 올림픽’도 열전=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데 성공했다. 개·폐막식 총감독으로 영화감독 장이머우가, 이 행사 불꽃놀이 등 시각특수예술총책임자로 화약미술가 차이궈창이, 주경기장 냐오차오 설계엔 스위스의 헤르조그&드뫼롱과 함께 설치 미술가 아이웨이웨이가 활약하는 등 올림픽 행사에는 중국의 주요 예술가들도 저력을 과시했다.

이 기간 열린 미술 행사에서도 올림픽의 흥분이 드러났다. 중국미술관에서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에 이은 차이궈창의 회고전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중국 정부는 올림픽을 맞아 봄철 내내 베이징의 대표 예술촌 다산쯔의 도로를 새로 포장했다. 올림픽을 앞둔 지난 2일 뉴욕 굴지의 화랑 페이스윌덴스타인은 이곳에 베이징 지점을 오픈했다. 청신동화랑과 탕런화랑에서는 중국 대표 현대작가들의 작품전을 열었다. 일찌감치 베이징에 진출한 국내 화랑 10여 곳도 중국 대표작가 특별전, 서구의 유명 조각가전, 국내작가 초대전을 열었다.

그러나 공안 당국은 평소와 달리 마오쩌둥이나 천안문을 왜곡한 미술품이 국가 이미지에 해가 된다며 사전 조사를 했고, 50명 이상의 모임은 사전 신고를 의무화했다. 때문에 작품이 해외에서 반입되지 못해 전시가 취소되거나 전시 개막 행사를 원활히 진행하지 못하는 등 ‘올림픽 특수’를 무색케 한 장면도 있었다.

◇정부가 끌고 기업이 밀고=중국 미술시장의 힘은 21세기 들어 세계 경제가 브릭스와 친디아를 이머징 마켓으로 주목하면서 충분히 예상됐었다. 세계적 미술시장 전문 잡지인 ‘아트 프라이스’에 따르면 중국 시장은 기득권 시장인 미국·영국·프랑스에 도전하여 2006년 4위를 차지했고(경매 낙찰총액 기준), 2007년에는 프랑스를 앞질러 세계 미술시장 점유율 3위에 올랐다. 역시 ‘아트 프라이스’가 발표한 500대 작가 리스트에도 2006년 35명에서 2007년 52명으로 늘어났다. 일본은 6명에서 4명으로 줄었고, 한국은 2007년에야 이우환 한 명이 오른 것에 비하면 대단한 파워다.

이같은 성장 배경에는 정부·기업·개인, 그리고 해외 화교의 예술과 돈에 대한 열정이 있다. 중국은 문화부에서 ‘예술시장’이란 미술시장 잡지를 발행한다. 미술시장에 관한 통계를 집계하고 전체 규모와 분야별, 작가별 순위를 발표한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앞으로 전국에 1000개의 미술관·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예술촌 개발도 중국 미술시장 발전에 큰 몫을 하고 있다. 2005년 베이징 다산쯔 798번지 폐공장촌에서 ‘다산쯔 페스티벌’로 시작된 중국 미술 열풍은 이곳을 아시아 미술의 메카로 바꾸어 놓아 세계 각국의 화랑이 입점을 꿈꾸는 곳이 되었다. 베이징에 계속 예술촌이 들어서 현재 10여 개에 달한다. 초기에는 정부도 예술촌 철거 문제를 자주 거론하였지만 지금은 육성책을 논하고 있다.

◇기업이나 개인도 미술시장 진입에 적극적이다. 기존의 본토 경매회사 자더나 한하이에 도전하여 군사기업인 바오리가 경매회사를 세워 3년 만에 4위로 성장하였다. 개인들도 수집과 투자에 적극적이다. 몇백 위안짜리 조그만 물건부터 몇천만 위안짜리 미술품까지, 고미술부터 현대미술품까지 고루 거래하며 시장을 튼튼히 떠받치고 있다. 베이징시는 판자위엔 등 주말 벼룩시장도 육성한다. 올림픽을 맞아 벼룩시장에 주차장까지 새로 만들어놓으니 기존의 가짜 그림 외에 가짜 조각까지 나타났지만 말이다.

◇올림픽 이후에도 열기 이어갈 것=특히 경매시장이 뜨겁다. 중국의 2007년 한 해의 미술품 경매시장 낙찰총액은 3조 2320억원, 하루 평균 88억원어치를 팔았다. 올해 중국 미술시장은 쩡판즈, 위에민쥔, 장샤오강, 왕하이칭, 류샤오둥, 천이페이로 대표되는 ‘F6’에 주목하고 있다. 대만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 ‘F4’에 비유해 ‘F6’라고 부르는 이들은 당분간 중국 미술시장의 화제를 양산할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 이후는 어떨까. 베이징 화랑가에서는 해외 대규모 화랑들의 공격적 진출로 중소 규모 화랑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의 관심, 두터운 컬렉터층이 있는 한 열기가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듯하다.

이머징 마켓으로 급성장한 중국은 아트 마켓에서도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시대를 제대로 향유해 보지도 못하고 흘려 보냈다. 이머징 아트마켓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에너지와 공유할 점을 찾아 우리도 삶의 활력을 되찾고 국내 미술시장이 되살아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베이징=서진수 교수 (강남대 경제학과)

◇경제학도인 서진수 교수는 국내외 주요 경매나 아트페어 등에 빠지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다. 7∼8월엔 모스크바·베이징 등 이머징 아트 마켓을 다녀왔다. 미술시장연구소를 운영하는 그는 미술계의 숫자들을 쉬운 말로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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