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차라리 댓잎이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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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성복(1952~ ), '차라리 댓잎이라면'

형은 바다에

눈오는 거 본 적 있수?

그거 차마 못 봐요, 미쳐요

저리 넓은 바다에

빗방울 하나 앉을 데 없다니

차라리 댓잎이라면 떠돌기라도 하지

형, 백년 뒤 미친 척하고

한번 와볼까요

백년 전 형은 또 어디 있었수?

백년 전 바다에

백년 뒤 비가 오고 있었다

젖은 그의 눈에 내리다마는 나는 빗줄기였다



흩날리는 것, 흩어지는 것을 두려워 마라. 머무는 것도 꿈꾸지 마라. 후회할 것은 없다. 후회한 뒤에 다시 태어날 약속도 없다. 우리는 영원히 떠있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으니 미친 듯이 흩어져라. 차라리 쓸쓸한 허공이 되어라.

박상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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