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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 배워야 자전거를 잘 탑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자전거족들이 크게 늘면서 인터넷을 통해 많은 회원 수를 둔 자전거 관련 인터넷 까페가 큰 인기다. 그중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는 단연 자전거족들의 성지로 통한다. 하지만 자전거에 관심을 가지고 ’자출사’에 가입을 한 후 이리저리 눈팅을 하다보면 낯선 용어로 번역 아닌 번역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나 인터넷 동호회 까페에서 흔히 사용하는 ‘그들만의 언어’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전거를 제대로 즐기려면 타는 법뿐만 아니라 ‘말’도 배워야 한다. 다음에 소개하는 몇 가지 인터넷 댓글로 ‘자전거 어휘력’을 테스트해 보도록 하자. 인터넷 까페에서 혼자만 왕따가 되지 마시라!

“종로갈비 먹벙, 폭파됐습니다. 차질 없으시길”
“아쉽네요, 그 날을 기다렸는데, 조만간 야벙 한 번 때리시죠.”
“네, 지난 16일 번짱님이셨던 ‘자전거짱’님께서 추진해주삼”

‘먹벙’, ‘야벙’, ‘번짱’ 등의 익숙하지 않은 말에 당황할 필요는 없다. 초창기 인터넷 용어 중 ‘번개’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대충의 의미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먹벙’은 자전거 번개나 정모(정기적인 모임)를 할 때 먹기 위해 모이는 것을 말한다. 라이딩 보다는 회원들끼리 모여 자전거를 타면서 맛집을 골라 다니며 ‘먹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전거 맛집 순례단’ 정도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 않는가!
‘폭파’는 모임이 취소되는 것을 말하고, ‘야벙’은 야간 번개모임을 말한다. ‘번짱’은 모임의 주최자를 뜻한다. ‘번짱’이 누구냐에 따라 그 날의 자전거 라이딩과 모임 성격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자전거 뽐뿌질에 지름신 등장으로 MTB구입했습니다. 내일부터는 광속입니다.”
“안라, 즐라 하셈”

‘지름신’은 이미 잘 알려진 인터넷 용어. 고가의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입했을 때 “지름신이 강림하셨다”고 표현한다. 지름신은 자전거족들에게도 꽤 두려운 존재다. 자전거에 일단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수입이 생기는 대로 자전거 관련 용품들을 업그레이드해서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전거족들이라고 해서 지름신을 이기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 그저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는 수밖에!
‘뽐뿌질’은 자신의 자전거를 타보라고 내주는 사람처럼 지름신을 부추기는 행위를 뜻한다. 좋은 자전거를 타보면 자연스레 ‘나도 한 번 구입해볼까, 사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안라’는 안전하게 라이딩을 하라는 인사말, ‘즐라’는 즐겁게 라이딩을 하라는 인사말이다.

“저 오늘은 자출합니다.”
“저도 자퇴합니다.”
“전 오늘 자빠링 했습니다. 오랜만의 자출이었는데.”

‘자출’은 자전거로 출근하는 것을 말한다. ‘자퇴’를 한다고 학적부에 기록이 남을 일은 없다. 자전거 퇴근을 뜻한다.
‘자빠링’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자출족들은 자빠링하면 아픈 것보다도 창피해서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즐라’를 위해서는 ‘자빠링’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오늘 피빨기 하던 뒷분~.”
“아, 감사, 줄다람쥐 다들 지우고 가셈.”

자전거에 웬 ‘피빨기’? 다소 험악한 용어로 들릴 수 있겠다.
‘피빨기’는 라이딩을 하다가 공기의 저항을 덜 받기 위해 앞 자전거의 뒤를 붙어서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뒤에 쫓아오면서 공기의 저항을 덜 받는 사람을 ‘피 빤다’라고 표현하고 앞 사람을 ‘피 빨렸다.’라고 말한다. ‘피를 빨았을 때’는 라이딩이 끝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이 자전거 족의 기본이다.
‘줄다람쥐’는 일명 ‘등줄쥐’라고도 말한다. 비 오는 날 자전거를 타면 등 쪽에 흙탕물이 튀기 마련인데 이를 뜻한다.

“텐덤 하고 다닐 125cc 바이크 샀어요. 여친 태우고 다니려고요.”
“부럽습니다. 경치 좋은 곳 가셔서 샤방샤방 주변 경관 다 둘러보세요.”

‘텐덤’은 일명 ‘(Tandem bike)를 소리 나는 대로 줄인 용어로 두 사람이 함께 탈 수 있는 자전거다. 커플이 타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만 남자 둘이 타면 변태, 혼자서 타면 애처로운 시선을 받을 수 있다는 일명 ‘커플 자전거’다.
텐덤을 구입할 때는 자신의 주변을 객관적으로 둘러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뒷좌석을 휑하게 비어놓고 탈일은 없는지 따져보라는 말이다. ‘샤방샤방’은 천천히 라이딩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이온음료 포카리스웨트 광고에 나오는 여자모델처럼 천천히, 우아하게, 아름답게 달리는 것을 말한다. ‘처음 만나는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달리는 속도’라는 공식을 떠올리면 적당하다. 뒷좌석에 맘에 드는 여성을 태우고 있는 힘껏 속도를 밟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15% 네고하기로 했어요”
“22일 넘어가면 각개하겠습니다.”

자전거 인터넷 까페에서는 회원들끼리 ‘자전거 장터’나 ‘사고팔기방’등의 게시판을 통해 중고 자전거, 자전거 용품들을 사고판다.
그중 ‘네고’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는데 ‘Negotiation'의 준말로 물건 값을 깎는 것을 말한다. 일명 ’협상‘이다. ‘네고 없음’이라고 하면 값을 깎아 주지 않겠다는 말이다. 쪽지나 이메일로 조금만 값을 깎아 달라거나 다른 물건을 옵션으로 해달라는 말은 일절 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각개’는 ‘각개격파’의 준말이다. 자전거를 부품별로 분리해서 개별적으로 팔겠다는 것이다. 안장, 타이어 등을 따로 따로 구매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알면 알수록 재밌는 자전거 인터넷 용어는

이 밖에도 인터넷 까페에서는 자전거족끼리 통하는 말들이 여럿 있다. 이 단어들을 아는 것이 자전거 타기의 필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을 선사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표준어인지 아닌지는 그 다음으로 고민해도 될 일이다.

tip
* 미벨 - 바퀴가 작은 자전거인 미니벨로를 줄여서 말함
* 뱀 - 튜브가 림에 씹혀서 펑크가 나는 것
* 광속 - 샤방샤방과는 반대되는 말로, 빨리 달리는 것을 말함
* 끌바 - 자전거를 타지 않고 끌고 가는 것.
* 멜바 - 자전거를 타지 않고 메고 가는 것.
* 업힐 - 오르막 길
* 다운힐- 내리막 길
* 버섯돌이 - 헬맷이 어울리지 않아 마치 버섯 같아 보이는 것.
* 깍두기(단무지) - 산악자전거용 타이어의 돌기가 깍두기 같이 생겨 부르는 말
* 마빡 - 저렴한 국산 헬맷 브랜드인 MACBAC을 소리나는 대로 읽음
* 딸랑이 - 자전거용 벨.

<참고자료: 인터넷 까페 자출사 아기곰푸(오종렬)>

<사진자료: 삼천리자전거>

장치선 객원기자 charity1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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