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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일본서 민영기 이도다완 초대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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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호방하면서도 엄숙하고 부드러운 조선시대 이도다완(井戶茶碗)-. 임진왜란 이후 4백여년간 한국도자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찻잔인 이도다완이 한국과 일본의 도자기 전문가,그리고 한국인 도예가의 손에 의해 마침내 다시 탄생했다.도쿄(東京) 니혼바시(日本橋)의 고미술화랑 고주쿄(壺中居)는 한국도예 가 민영기(閔泳麒.49.경남 산청요)씨의 「이도다완 초대전」을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열었다.소개된 작품은 높이 8㎝내외,직경 14㎝정도의 45점.
개막일 오전10시.90년부터 정양모(鄭良模)국립중앙박물관장과함께 이도다완의 재현을 꿈꿔왔던 도쿄국립박물관 하야시야 세이죠(林屋晴三.67)명예관장은 초청인사들의 손을 이끌고 일일이 다완을 뒤집어 보이면서 『정말 이도다완답다』는 찬 사를 아끼지 않았다. 일본 다도에 관련된 도자기쪽에서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전문가인 하야시야 명예관장의 평가는 마침내 이도다완의 명맥이 되살아났음을 공식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다도계에서 『다완은 첫째가 이도』라고 할만큼 이도다완은중국과 일본의 도자기를 제치고 최고의 명품으로 손꼽힌다.그래서무수히 많은 도예가들이 이도다완의 재현을 시도해 왔다.하지만 『형태는 같을지라도 소박하면서도 품격 있는 이 도다완의 맛은 없었다』고 하야시야 명예관장은 말한다.
이도(井戶.우물)의 어원은 경남하동의 「샘골」가마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이도의 조건은 까다롭기 그지없다.우선 굽이듬직하게 높고 몸통이 곧게 벌어질 것,그리고 유약색은 황백색일것.그외에 그릇바닥의 비짐눈 자국,몸통의 물레 흔적,굽의 대나무마디 자국 등까지 따진다.
조선시대 경상남도 일대의 지방가마에서 일반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만든 이도다완은 도자기 흙도 모래가 드문드문 섞일 정도로 거칠고 형태는 꾸밈없이 소박하면서 단단한 게 특징이다.
현재 국내에는 단 한점도 전하는 것이 없는데 임진왜란 무렵 일본에 건너가 일본 다도(茶道)의 「무언가 모자라는듯 보이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는 「와비정신」이 담겨 있어 차도구,특히 말차(抹茶)잔으로 대단한 각광을 받았다.
閔씨가 고주쿄에서 선보인 이도다완은 외관상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면서도 한국적 품격과 멋의 재현에 가깝다.하야시야 명예관장도 이 점을 십분 인정,『민영기씨의 이도다완』이라고 말했다.이는 정양모관장이 물레솜씨가 좋은 閔씨를 90년초 하야시야 관장에게 소개하면서 겨냥했던 대목이기도 하다.鄭관장은 『옛날 솜씨로 요즘 것을 만들어보자.그게 전통계승이 아니겠는가』라면서 『閔씨에게 이도다완을 다시 만들어보게 한 것도 그런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도자기전문가들의 발상과 생각을 빌린 閔씨가 이제까지 만들어본 이도다완은 7만여개.지난해말 대강 이도의 모습이 드러날 때까지 한해 1만개씩을 만들어 부숴버려야 했다.閔씨는 그 과정에서 교토(京都) 다도자료관 아카누마 다가(赤沼多佳)학예부장을 통해 이도다완 명품을 직접 만져보고 감을 익히며 작업을 되풀이했다.
閔씨는 이제 이런 말을 한다.『이도다완이 몇가지나 되는 형태나 유약의 조건에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욕심없이 만들고만들어 놓고 봐서 마음에 편하면 그게 이도의 정신일 겁니다』라고. 경남 산청태생인 閔씨는 73년 당시 문공부추천으로 규슈(九州)의 한국계 도공 나카사토 다로우에몬(中里太郎右衛門)아래서도자기를 익혔다.77년부터 산청에 가마를 박고 작업해온 중견 도예인이다.
도쿄=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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