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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 “베이징 푸른하늘 처음 봐 … 올림픽이 바꾼 중국 보는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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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성화가 꺼지고, 베이징 올림픽이 17일 만에 막을 내렸다. 많은 중국인은 ‘아시아의 병자(病夫)’란 오명을 벗고 100년의 꿈을 실현했다는 자부심에 들떠 있다. 금메달을 가장 많이 딴 중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샘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중국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번 올림픽을 지켜봤을까. 중국의 대표적 논객인 베이징사범대학 위단(于丹·43·여·사진) 교수를 단독으로 만났다. 한국에도 번역돼 관심을 모은 『논어심득(論語心得)』의 저자로, 중국중앙방송(CC-TV)에서 논어를 강의해 중국인들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얻으며 ‘공자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인물이다. 그의 입을 통해 중국인의 시각에서 이번 올림픽의 의미와 평가, 중국인들이 느낀 솔직한 심정, 앞으로 나아갈 방향 등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22일 오후 베이징 시내 한 호텔의 전통찻집에서 이뤄졌다. 방송 출연 경험이 많은 달변가답게 위단 교수는 던지는 질문마다 거침없이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이 실현됐다고 보나.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인류와 지구가 존재하는 한 우리 모두가 계속 노력해야 할 숙제다. 하나의 꿈은 전쟁·빈곤·불평등·강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추구해야 할 꿈일 뿐이다. 우리는 그 꿈을 위해 적극 노력했고 큰 진전도 있었다. 하나의 세계 위에서 하나의 꿈을 위해 노력해야지만 그 꿈은 한순간에 완성되고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의 주제가 ‘나와 너’에 나오는 가사(心連心)처럼 이번 올림픽이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제대로 이어줬나.

“남자 육상 100m에서 금메달을 딸 때까지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 선수가 누구인지 중국인들은 몰랐다. 그러나 그가 20일 육상 200m에서 금메달을 따고 다음날(21일) 시상식에 참석하자 일부 관중이 “오늘은 볼트의 21번째 생일”이라며 영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잠시 뒤 9만여 명의 관중이 이를 합창했다. 이런 아름다운 장면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하나의 꿈은 좀 더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왔다고 생각한다. 쓰촨(四川) 대지진 사흘 뒤 서울에 갔을 때 통역을 맡은 아주머니가 한국 돈 10만원(약 700위안)을 성금으로 내달라고 내게 맡기더라. 그 순간 나는 이미 마음과 마음이 이어졌음을 느꼈다.”

-이번 올림픽의 가장 큰 의미는.

“금메달 숫자뿐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 면에서, 환경보호 측면에서 만족스럽다. 가장 중요한 의미는 단순히 스포츠 제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것을 넘어 중국이 글로벌 기준을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올림픽을 통해 중국은 전 세계의 검사를 거쳤고, 세례를 받았다. 진정한 의의는 ‘포스트 올림픽(올림픽 이후)’ 시대 문명을 건설하는 데 있다. 올림픽은 그 자체로 종점이 아니라 중국에는 새로운 문명 건설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더 개방되고 더 세계화될 것이다.”

-가장 큰 수확은.

“올림픽은 중국인에게 새로운 생활 방식, 새로운 문명의 건설을 촉진시켰다. 올림픽이 끝난 뒤 택시·식당 등 서비스 분야의 ‘미소 서비스’는 수준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 베이징의 푸른 하늘은 베이징에서 나고 자란 나도 처음 봤다. 네이멍구(內夢古)의 대초원이나 미국에서나 볼 수 있는 하늘이었다. 맑아진 공기를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유형의 금메달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이런 무형의 가치들이 진정한 수확이다.”

-중국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올림픽을 치렀나.

“올림픽 유치 단계에서부터 미래 세대에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를 생각하고 노력했다. 이미 올림픽 개막 전에 중국 정부는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고 환경친화형 장바구니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택시를 비롯한 서비스 분야에서는 인사하는 방법부터 고쳤다. 이런 모든 것들은 올림픽 이후의 문화를 위한 것이다. 개혁·개방 30년이 지났는데 논어에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는 말이 있듯, 30년간 일으킨 것은 하드웨어 건설이었다. 경제 지표가 좋아졌지만 이제는 소프트 파워를 일으켜야 한다.”

-올림픽을 치르면서 중국인들은 무엇을 배웠나.

“주경기장 냐오차오(鳥巢)와 국가수영장 수이리팡(水立方)에서 중국인들은 어떻게 경기를 관람해야 하는지를 하나씩 배웠다. 외국인 선수들에게 진정으로 갈채를 보냈다. 과거엔 경기장에서 동양인들은 조용했다. 그러나 이번엔 자원봉사자의 안내를 받아 관중이 파도타기 응원도 했다. 동양인의 표현 방식이 더 세계화되고 더 열정적으로 변했다. 포용하는 자세도 보여줬다.”

-가장 아쉬운 점은.

“기대한 종목에서 금메달을 못 땄다고 아쉬울 것은 없다. 남자 110m 허들에서 류샹(劉翔)이 모든 아시아인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지만 우리가 그를 비난한다면 그것이 진짜 유감이다.”

-인문(人文) 올림픽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나.

“인문 올림픽 각도에서 중국은 세계를 향해 뭔가를 보여주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와 소통하고 싶어했다. 내 집에 있는 물건을 꺼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올림픽은 전람회(엑스포)가 아니다. 옛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새 문화를 만들어 내는 데 진정한 인문 올림픽의 의미가 있다.”

-올림픽 이후 중국은 어떻게 바뀔까.

“중국은 전 세계와 궤를 같이할 것이다. 지난 30년간 고속 성장한 경제는 속도 측면에서 시험을 치러야 할 것이다. 세계와 접목되기 전에는 쾌속 성장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속도가 둔화할 수도 있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일부를 포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는 속도보다 질을 더 중시할 것이다.”

-올림픽 이후 중국의 내부 모순이 격화하거나, 배타적·폐쇄적 사회로 돌아갈 우려는 없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은 더 좋아지고 더 개방될 것이다. 우리는 국가의 문을 닫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나라 문을 걸어닫으려고 그렇게 많은 외빈을 초청한 게 아니다.”

-편파 판정, 불공정 응원 논란 와중에 중국이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따 ‘중국위협론’이 더 확산할 수도 있을 듯한데.

“과거 미국이 1위를 할 때 중국은 깨뜨릴 수 없는 신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국은 1위가 되려고 분발했고, 1위가 됐지만 다른 국가들이 이 기록을 깰 수 있다. 올림픽 모토가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가 아닌가. 모두가 ‘더’를 추구할 수 있다. 금메달을 놓고 누가 누구에게 위협이 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더 아름다운 지표는 ‘내가 참여하고, 내가 봉사하고, 내가 즐겁다’라는 올림픽 정신에 있다. 금메달은 올림픽의 유일한 평가 지표가 아니다.”

-중국이 머잖아 미국을 추월할 것이란 예측이 있다.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이 완성된 중국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예언가가 아니다. 우리가 목표를 세울 수는 있어도 발전 그 자체는 통제할 수 없다. 우리는 단지 더 많이 노력할 뿐이다. 2049년은 중국에 의미가 각별한 해다. 나도 그때까지 살아서 80대의 나이에 국가와 민족이 더 발전한 모습을 보고 싶다. (웃음) 하드웨어 측면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사진=김경빈 기자



“공자의 화위귀, 후진타오 조화와 통해”

위단 교수가 말하는 공자와 중국인

“중국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공자의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이다. 공동체와 개인의 조화를 가능케 해주는 가치들이다.”

‘논어 전문가’인 위단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물질적으로 풍요해진 중국인들에게 정신적 공백을 공자가 채워줄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중국인들은 한동안 이런 가치들을 잊고 지냈지만 이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봉건적이라고 비판받았던 공자가 집중 부각된 이유에 대해 위 교수는 “사회주의 제도에 변화가 생기면서 정신적으로도 큰 변화가 몰아닥쳤다”며 “물질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 정신적으로 위안받는 길을 모색하다 공자를 찾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럽식이나 미국식 문화는 중국인의 정신적 공허함을 채워줄 대안이 될 수 없어 동양문화에 속한 중국이 2000여 년 전의 문화 뿌리를 다시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위 교수는 “중국인뿐 아니라 모두가 문화의 뿌리를 잃지 말고 다문화 속에서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자가 말한 ‘화위귀(和爲貴: 어울림을 귀하게 여긴다)’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내세운 조화(和諧)사회론은 서로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논어’에 대해 그는 “사람이 평생 읽어야 할 책”이라고 소개하고 “한두 구절만 발췌해 뜻을 곡해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영상미디어과 교수인 그는 한류(韓流)에 대해 “가정윤리, 시어머니와 며느리, 효도사상 등 동양적 가치에서 시장을 창출해낸 한국의 저력을 중국은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위단 교수=1965년 베이징(北京)에서 태어났다. 베이징사범대를 졸업했으며 중국 고대문학 석사와 영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베이징사범대 예술 및 미디어과 교수다. 2006년 10월 국경절 황금연휴 때 중국중앙방송(CC-TV)의 학술 강좌 프로그램 백가강단(百家講壇)에서 논어 강연을 하면서 하루아침에 전국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내놓은 책 『논어심득(論語心得)』은 출간 3개월 만에 250만 부가 넘게 팔리며 중국에 ‘위단 신드롬’과 ‘공자 붐’을 일으켰다. 지난해 3월 출간된 『장자심득(莊子心得)』은 초판을 아예 100만 부나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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