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의 美 은행 사냥 대어 될까 폭탄 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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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17면

지난주 금요일 미국 주가가 크게 오른 배경에 한국이 있었다. 한국산업은행이 월가의 ‘시한폭탄’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하려 한다는 뉴스를 로이터가 타전하자 금융 부실 청소가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고조됐다는 소식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고 했던가. 한국 금융은 10년 전 위기 때 콧대 높은 월가에 무릎을 꿇었다. 채권 만기 연장, 증자 참여를 애원하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불평등 계약을 맺었다.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다. 158년 역사, 투자은행 4위의 리먼이 한국에 손을 벌리고 있으니 말이다. 리먼의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는 석 달 전 발표한 한국 관련 보고서가 올라와 있다. 제목은 ‘더 높이 떠오르는 한국(South Korea:Reaching Higher)’이다. 새 주인을 맞을 환영 플래카드처럼 보인다.

한국이 왜 구원투수로 급부상했을까. 중동계 오일머니나 중국계 자금은 미국의 견제 대상이다. 유럽은 서브프라임 폭탄을 똑같이 맞은 처지이고, 일본은 신중하다 못해 소심하다. 이에 비해 한국은 의욕에다 능력까지 겸비한 것으로 비쳤을 법하다. 경험이 부족하고 미국에 고분고분한 성향을 의식했을지도 모른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취임 직전까지 리먼의 서울지점 대표를 지냈다. 그는 “미국 투자은행은 신용경색이 심해지면 자산을 싸게 매각할 것이다. 그 틈에 투자 여력이 있는 우리가 들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글로벌 IB(투자은행)와의 제휴를 통해 규모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수차례 밝혔다.

금융계는 이번 딜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이다. 대어를 싸게 낚을 수 있고, 부실폭탄을 잘못 건드려 동반 부실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먼 인수설은 지난주 초반 ‘딜이 깨졌다’에서 후반 ‘가능성은 열려 있다’로 바뀌었다. 협상은 원래 밀고 당기기다. 10년 전 월가가 한국을 어떻게 상대했는지 돌아보자. 그들은 한국의 절박한 사정을 이용해 ‘결렬 선언’을 밥 먹듯 하며 원하는 조건을 관철했다.

급한 쪽은 리먼이다. 금융회사 매물은 더 쏟아질 것이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배웠다는 선진 금융 노하우가 아니더라도 산업은행이 협상을 일사천리로 진행할 이유는 없다. 미국 월가를 움직이는 한국발 뉴스를 더 즐겨 보자.


 
▶이번 주
●25일 금융감독원,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의 리스크 관리 지원 방안 발표 ●26일 지식경제부, 기업가 정신 제고 방안 수립 및 추진 계획 발표 ●27일 기획재정부, 공기업 선진화 방안 2차 추진 계획 및 세계탄소시장 현황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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