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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리조트는 종합레저 본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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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 남해(큰 사진)와 덕산 스파캐슬.

시대가 변했으니 노는 법도 달라진다. 먹고살기 빠듯했을 땐 훌쩍 떠나기만 해도 좋았고, 해외여행 제한이 풀린 20년쯤 전엔 여권만 갖고 있어도 우쭐해지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됐고, 초등학생까지 해외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세상이다. 한국의 레저문화는 시방 격변의 와중에 있다. 특히 리조트 시장에서 변화가 두드러진다. 외국의 호화 리조트 부럽지 않은 시설과 규모를 갖춘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2005년 이후 문을 연 신개념 리조트는 벌써 여남은 곳을 헤아린다. 여기서 ‘신개념’이라고 쓴 건, 요즘의 리조트가 달라진 풍속도를 반영하고 있어서다. 이들 리조트는 콘도미니엄(이하 콘도) 수준의 숙박시설을 넘어선 새로운 차원의 레저 인프라다. 말하자면 전천후 종합레저 본부인 셈이다.

리조트 전성시대

충남 보령시 무창포해수욕장. 인근의 대천해수욕장보다 한적해 가족단위 피서객이 조용히 머물다 가는 서해안의 작은 해수욕장이다. 지난달 말 여기에 복합리조트 ‘비체팰리스’가 들어섰다. 1973년 용평스키장을 개장한 이래 한국의 콘도 문화를 선도한 용평리조트가 처음으로 강원도 바깥 땅에 세운 리조트다. 압권은 로비 1층을 나서자마자 연결되는 백사장이다. 236개 객실은 모두 바다로 창이 나 있고(오션 뷰·ocean view), 리조트에 설치한 물놀이 시설은 여느 워터파크 못지 않다.

전북 부안의 격포항에도 지난달 말 ‘대명리조트 변산’이 문을 열었다. 입지가 좋다. 기암절벽을 자랑하는 변산반도 국립공원 안에 우뚝 서 있다. 걸어서 5분이면 해안. 그러나 초대형 물놀이 시설을 갖춰놨다. 객실 504개 모두 오션 뷰로 설계됐다. 대명리조트는 변산 오픈으로 전국에 12개 리조트를 거느린 한화리조트를 제치고 국내 최대 객실(5150개)을 보유한 리조트 업체로 등극했다.

이 밖에도 제주도 섭지코지에 ‘휘닉스아일랜드’가 올 4월에 오픈했고, 충남 보령의 ‘대천펀비치’도 올 5월 전면 재개장했다. 다음달엔 경남 통영에서 ‘클럽 ES’가 본격 영업을 시작하고, 강원도 태백에선 국내 최고 높이(해발 1100m)의 ‘O2리조트’가 문을 연다. 올해만 리조트 여섯 곳이 새로 등장하는 것이다. ‘덕산스파캐슬’이 충남 예산에 들어선 2005년 7월 이후, 열 개가 넘는 고급 리조트들이 앞다퉈 문을 열고 있다. 2010년까지 리조트 네댓 개가 더 문을 열 예정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박선현 수석연구원은 “리조트들의 공세적인 움직임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올해부터 리조트 업계 매출액이 연평균 12.2%의 성장률을 나타내며 2010년엔 1조3000억원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쏠비치(사진·下). O2리조트

호텔이냐 리조트냐

남해안 지역은 수려한 풍광에도 열악한 숙박시설이 문제였다. 그러나 거기에도 명소가 들어섰다. 2006년 10월 경남 남해시에 문을 연 힐튼 남해 리조트다. 힐튼(Hilton)? 그래, 맞다. 세계적인 호텔·리조트 체인 힐튼이 직영하는 리조트다. 다시 말해 여기는 한국 최초의 해외 브랜드 리조트다. 호텔급 시설과 서비스가 아니라 그냥 호텔의 시설과 서비스다. 대신 밥을 해먹을 수 없고 봉사료도 추가로 내야 한다.

최근에 문을 연 리조트들은 특급호텔 부럽지 않은 시설과 서비스를 자랑한다. 제주의 휘닉스아일랜드는 아침식사를 무료 제공한다. 호텔의 기본 개념인 BB(Bed+Breakfast) 서비스를 도입한 것이다. 휘닉스아일랜드의 또 다른 특징은 우아함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얌전히 엎드려 있는 리조트 건물, 국내외 유명 작가의 예술작품으로 돋운 고급스러운 분위기 말이다.

지난해 여름 영업을 시작한 강원도 양양의 쏠비치는 이미 럭셔리 리조트의 대명사로 통하는 참이다. 국내 리조트 중에서 이른바 개인해변(private beach)을 처음 도입했다. 리조트 앞마당이 동해 바다다. 리조트 건물은 지중해 연안의 리조트 모양을 본떠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미 탄탄한 매니어층을 확보한 리조트업체 ‘클럽 ES’가 경남 통영에 세운 ‘ES 통영’ 역시 낮은 지붕의 지중해 풍으로 지어졌다. 콘도 하면 떠오르는 고층 빌딩의 이미지는 이들 리조트와 무관하다.

호텔을 배우려는 리조트의 시도는 곳곳에서 보인다. 리조트들은 호텔급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호텔리어를 수시로 영입하기도 한다. 한 리조트 관계자는 “호텔 주방장뿐 아니라 객실부장, 지배인까지 영입 대상”이라고 귀띔했다. 최근에 문 연 리조트는 저마다 호텔 출신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고급화·차별화 전략은 급기야 귀족형 리조트도 탄생시켰다. 지난해 1차로 문을 연 용평의 ‘포레스트 레지던스’다. 리조트의 경우 30∼40평형이 대부분인데 여긴 230평형짜리도 있다. 회원권 가격이 20억원이 넘는다. 최고급 별장인 셈이다.

테마파크 못지않은 재미

콘도 장사는 시쳇말로 ‘방 장사’였다. 어떻게든 방만 채우면 됐다. 이용객도 콘도로부터 잠자리 이상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리조트 안에서도 놀거리가 넘쳐난다. 굳이 리조트 바깥에서 놀아야 할 필요가 사라졌다. 이를 테면 바닷가에 들어선 이른바 ‘비치형 리조트’가 내부에 대형 물놀이 시설을 들여놓았다. 충남 대천해수욕장에 위치한 대천펀비치가 대표적인 예다. 이 리조트의 모기업이 국내 워터파크의 기획·설계·시공을 맡았던 업체다. 서해안 최대 해수욕장에 있으면서도 최첨단 물놀이 시설로 무장한 셈이다. 앞서 언급한 비체팰리스나 대명리조트 변산도 마찬가지다.

겨울 한 시즌 반짝 영업에 성패를 걸었던 스키장 리조트도 온갖 종류의 여름용 놀거리를 장착했다. 강원도 홍천의 스키장 리조트 ‘비발디파크’가 2006년 ‘오션월드’란 초대형 물놀이 시설을 개장한 뒤로 비발디파크는 사계절 리조트로 거듭났다. ‘스노보더의 천국’이라 불리는 강원도 평창의 휘닉스파크 역시 올해 첨단 물놀이 시설을 들여놨다. 겨울엔 스키장, 여름엔 워터파크의 전천후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스키장 리조트의 신예 강자 하이원리조트도 이달 초 국내 최장 길이(2.2km)의 유럽형 모노레일 ‘알파인 코스터’를 설치하는 등 여름 사냥에 나섰다.

대명리조트 김경진 대리는 “물놀이 시설은 스키 시즌에도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낸다”며 “1년 내내 즐길 수 있는 이벤트와 놀 거리를 완비해 사계절 리조트로 전환하는 게 업계의 당면 과제”라고 말했다.

복합 리조트 시대의 명과 암

국내 리조트의 복합화·고급화·대형화 경향은 뚜렷하다. 리조트 업계는 국내 수요뿐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수요까지 흡수하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에 따른 파장도 곳곳에서 보인다. 특급호텔이 역으로 리조트의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특급호텔들이 서머 패키지에서 가족 단위 이용객을 위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거나, 제주 신라호텔이 ‘클럽메드’ 리조트의 GO(일종의 레저 도우미)를 본뜬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그 예다.

리조트 회원권 가격이 상승하는 것도 고급화 경향의 결과다. 그러나 업계에 따르면 회원권 분양시장은 현재 활황세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개인회원 수를 공개할 순 없지만 개인회원 숫자가 증가하는 건 분명한 흐름”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왜 리조트들이 사업 확장에 매달리겠느냐”고 되물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제주도에서 펜션타운을 운영하는 손태원씨의 설명을 듣는다. 그는 해외여행 1세대 출신으로, 1990년대 중반 제주도에서 처음 펜션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이다. “경기가 안 좋다고 해도, 우리에겐 이미 레저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다. 편안한 휴식을 위해 일정 정도의 투자는 감수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해외의 호화 리조트를 경험해 본 한국인이 부지기수인 오늘, 그들의 기대 수준을 만족시킬 만한 국내 리조트의 출현은 당연한 현상이다. 수요가 있어 공급이 발생한 것이다.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당분간 시장이 위축되진 않을 것이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서천범 소장은 “기존의 콘도가 너무 낡아 회원 유지가 어렵게 되자 리조트 업계가 신상품을 출시했다고 보는 게 맞다”며 “리조트의 고급화는 국내 레저문화도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아울러 레저문화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부추긴다는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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