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와 근대성 논쟁 불붙어-활기띠는 국내학회 학술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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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하버마스의 방한으로 조성된 「하버마스 열풍」이 걷히면서 국내인문사회학자들의 올봄 학술행사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가운데 국내학계의 독자적인 이론적 쟁점과 연구성과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학술 행사가 열리고 있어 관심을 끈다.
요즘 국내 학계의 화두는 90년대 들어 분석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시민사회론」「문화」「근대성」.민주-반민주, 자본주의-사회주의 구도가 위력을 상실하면서 국가나 자본 중심의 이론에서벗어나 사회의 다양한 영역을 범주화해 새롭게 파 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시민사회 존재여부와 시민운동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한국시민사회와 참여민주주의」라는 주제의 참여사회연구소(소장 김대환)창립심포지엄(11일).문화에 대한 지금까지의 사회학적 분석이 갖는 이론적 한계와 가능성을 짚어보기 위한 한국산업사회학회(회장 박노영)의 발표 및 집담회(11일).그리고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이이화)가 18일 성균관대 종합강의동에서 개최하는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이 그 쟁점들을 다룬 대표적인 경우다. 세 학술대회에서 논의됐거나 논의될 쟁점들을 소개한다.
◇시민사회와 참여 민주주의 시민사회에 대한 이론적 관심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로 기존의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불가능했던 주민.노동.여성.교육.환경.평화 등 다양한 시민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시민사회란 경제와 권력에 대해 정당성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압력을 행사하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민주적 결사체,혹은이데올로기 기구의 활동을 가리키는 사회학적 개념.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한국에서 시민사회가 발전하지 못한 특수성을 국가권력의 과잉에 따른 시민사회의 저발전이라 분석하면서 세계화에 따른 시민사회의 구조 및 소비양식의 변화,시민사회로부터 유리된 정당정치.지역주의 정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장 쟁점이 되었던 부분은 분단과 외세의 개입으로 시민사회가 끊임없이 정치로 편입돼왔던 후발자본주의 국가인 우리 나라에서 과연 독자적인 시민운동이 어느정도 가능할 것인가에 모아졌다.시민사회에서의 합리적 토론을 통한 사회발전이 당위 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별개의 문제.참여사회 시민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이 학자들 사이에서의 고민은 바로 우리의 조건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케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문화와 사회발전 「문화」도 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과 아울러 정치.경제 영역 이외에 문화에서 사회동력을 찾고자 하는 노력으로 새롭게 부상한 연구영역이다.
한림대 유팔무(사회학)교수가 하버마스.그람시.부르디외의 이론들 중 어떤 문화이론이 우리 사회에 적합성을 갖는가를 분석.평가한데 이어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대중문화.종교.유행.
한국인의 인맥 등 시민들의 문화적 일상성을 분석하 는 논문이 발표됐다.
그러나 이같은 문화분석이 사회를 인식하는데 중대한 패러다임의변화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 일반적 흐름이었다.『이제 문화현상을 단순히 분석.해석하는데그칠 것이 아니라 문화분석이 갖고있는 패러다임 적 의미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아야 한다』는 정준영(한림대 강사)박사의 토론에서의 지적도 바로 문화연구가 갖는 암묵적 전제에 대한 반성적 검토를 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 최근 「식민지 근대화론」 「개발독재론」 등 근대화론에 대한 대응의 의미를 지닌 이 심포지엄에서는 역사학계와 사회과학계의 근대성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분석한 임현진(서울대)교수의 논문에 이어 해방전후의 민족국가 형 성과 관련된 근대성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특히 외세의 지배에 대한 반작용으로 형성된 민족주의가 근대에순기능적으로 작용했는가를 다룰 김동춘(서울대 지역종합연구소)박사와 박명림(고려대 강사)박사의 논문과 북한의 집단경제체제와 주체사상이 북한사회 근대성 실현에 어떻게 작용했 는지 분석한 서동만(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씨의 논문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학회에서는 외국 이론들에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우리 현실에 대한 고민을 담고자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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