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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배낭여행 부부체험기-이강혁.조현정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맞벌이 부부였던 이강혁(李康赫.32.서울동작구상도4동).조현정(趙賢靜.31)씨는 지난 94년 5월부터 9월까지 1백30일간 해외 배낭여행을 했다.이들이 나란히 다녀온 나라는 유럽 22개국과 터키.홍콩 등.趙씨는 또 여행후 사진공모 전에 입상,항공권을 부상으로 받아 지난해 겨울에는 44일간 단신으로 유럽배낭여행을 하기도 했다.배낭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이들 부부 체험기를 싣는다.
[편집자註] 우리는 평범한 부부였다.남편은 대기업 사원이었고나는 지역 청년회의소 간사였다.굳이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든다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 정도다.
결혼후 6개월이 지난 어느날 우연히 서로에게 『꼭 해보고 싶은 일 한가지』를 물었다.남편은 여행을 말했고 나는 발길 닿는대로 떠나고 머무는 자유배낭여행을 원했다.세상을 있는 그대로 둘러보고 싶다는 욕심이 서로에게 있었다.떠날 용기 만 있다면 다시 시작하는 건 어려울게 없다며 서로 격려하면서 1년여에 걸친 준비기간을 가졌다.매주 한국유스호스텔을 찾아 여행상담을 하고 방 한쪽 벽에 유럽 전도를 붙여놓고 도시를 익히며 여정을 짰다.출발 3개월 전부터 체력을 단련했 고 떠나기 한달 전에는각각 직장을 그만두었다.
출발 1주일전.보안을 유지해오던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승낙을받아냈다.국내 명승지 사진과 가족사진 등으로 한국 소개책자를 만들고 기념품까지 준비해둔 우리를 부모님들도 만류하지는 못했다. 영국에서 터키까지는 할인 비행기로,터키.그리스.이탈리아 이동은 배로,이탈리아부터는 유럽철도 패스로 움직였다.3개월짜리 유레일 패스를 사용하며 49일을 밤기차나 밤배로 이동했다.터키의 항구도시 쿠자다시에서는 도착 직후 서로를 잃어버 렸다.경찰서로 달려갔지만 땡볕아래서 온갖 상점을 뒤지다 한나절만에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근무 교대한 경찰이 알아본 덕택이었다.화로처럼 새빨갛게 달구어져 있던 남편의 얼굴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노르웨이 오슬로행 밤기차에서 만난 카렌 가족은 김일성 사망소식을 한국 대통령 사망으로 알려줘 한동안 우리를 놀라게 했지만 그들 집에 초청해 물침대에서 자게 해주는 호의를 베풀기도 했다.터키에서 대학생 배낭여행객들을 만나 큰 맘먹고 배부를때까지 밥좀 먹어보자는 생각에 5명이 느끼한 볶음밥을 13인분이나 먹고도 예산 걱정만 없었다면 더 들고 싶기도 했다.
결혼 이후 줄곧 가계부를 써왔던 탓에 자연스럽게 여행 시작부터 끝까지 일기를 쓰고와 금전 출납사항을 기록했다.각종 입장권과 영수증을 붙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은 남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여행내내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서로의 참모습을 확인하는 순간마다 느꼈던 기쁨과 안도감은 든든한 밑천으로 우리를 더욱 씩씩하게 했다.
여행후 남편은 곧바로 경영컨설팅회사의 컨설턴트로 취직이 됐고나는 배낭여행객들에게 경험을 들려주고 싶어 유스호스텔 연맹에서1년여동안 자원봉사를 했다.배낭여행이 책임감을 키워주고 생활을풍부하게 해주는 건 틀림없지만 유행처럼 번진 다고 무작정 따라해서는 심한 후유증을 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강혁.조현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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