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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사람말고 마음을 빼가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황홀한 과일맛에 반한 세사람의 손님이 주인에게 물었다.과일씨를 얻어갈 수 없겠느냐고 물은 것은 중국인이었다.일본사람은 가지 한토막을 잘라가려 했다.접붙이기 위해서다.한국사람은 나무값이 얼마냐고 물었다.남의 마당에 있는 과일나무를 뿌리째 뽑아 갈 셈이었다.우스개 비유지만 기술이전에 대한 세나라 사람의 태도가 서양사람의 눈에 그렇게 비쳤다.
20세기 마지막 국회의 개원(開院)을 앞두고 밝아야 할 정가에 먹구름이 비껴있다.남의 당(黨) 국회의원 빼가기가 말썽이다.밀고 당기는 대화정치를 통해 마음을 움직이기 보다 송두리째 사람을 빼앗아가는 정치풍토가 야멸차다.씨를 발리거 나 가지를 쳐가는 것이 아니라 당선자를 통째 업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과반수 의석을 채워 안정을 꾀한다지만 또 다시 거수기(擧手機) 집단을 만들어 밀어붙이기식 국회운영을 꿈꾸고 있는가.빼가는 것은 거수기지 신념의 정치인 영입으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야당은 지난 총선거를 깡그리 부정(不正)으로 몰아 원(院)구성마저 거부할 태세지만 또 다시 드러눕기식 극한투쟁으로 21세기 정치를 열 것인가.지역분할로 뒷걸음질치는 것도 부끄러운 터에 개원전야의 빼가기 정국은 G7진입 장미빛 청사 진을 시들하게 한다.
우리는 미국식 민주제도를 본뜨고 있다.국회의원들이 뻔질나게 미국의회를 견학하고 왔건만 그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할 때가많다.지금 열려 있는 미국의 104대 국회는 야당인 공화당 천하다.상.하 양원 모두 여소야대다.기세등등한 7 3명의 신인돌풍을 탄 「깅그리치혁명」은 불가능이 없어 보인다.그러나 지난번공화당이 밀어붙이려던 헌법고치기는 어떻게 되었는가.균형예산을 위한 헌법수정안이 하원을 통과하고 상원문턱을 넘어서려 할 때였다.여당의원 14명의 「반란표」까지 넘어왔다.그러나 정작 자기진영의 마크 헤트필드 의원이 반대로 돌아섰다.예산이 없어 문닫는 정부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한표의 신념」을 돌려놓기 위해 봅 도울 원내총무는 부시 전대통령의 도움까지 청했다.27년의 의정생활에서 그같이 머리숙여보기는 처음이라 했다.그러나 허사였다.3분의2 득표에서 1표가모자라 깅그리치호(號)는 침몰하고 말았다.크로 스 보팅(자유투표)에서는 정책에 따라 여야간에 표가 넘어오고 넘어간다.사람을빼가는 것이 아니라 표를 빼갈 뿐이다.
국회는 토론의 장(場)이다.장(arena)은 마음 뺏기 경쟁장이다.거수기 통과기관이 아니라 대화와 설득의 활무대다.표가 필요하면 여당은 야당을 흔들만한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야당도 마찬가지다.똘똘 뭉친 힘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 아 여당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방책뿐이다.
대통령중심제 아래 국회는 집행부에 대한 견제기능이 가장 중요하다.모든 권력이 의회로 집중하는 의원내각제와 착각해서는 안된다.내각제는 정책이 실패할 경우 내각도 국회도 날아갈 수 있는책임정치다.엄한 당기(黨紀)를 요하는 그같은 내 각책임제하에서도 결속력은 판판이 깨지고 있다.남의 당 노선에 따르는 괴짜가많기 때문이다.
다원화.다핵화로 일사불란한 하향식(下向式) 통제가 불가능한 것이 민주주의 현주소다.그래서 국회는 대화의 장소다.목에 넘어가지 않는 가시도 타협으로 넘기는 것이 정치다.40년만에 다수당의 자리를 넘겨준 미국의 104대 의회 개원식장 면이 생각난다.물러나는 리처드 게파르트 다수당 원내총무가 새로 떠오른 깅그리치 하원의장에게 의사봉을 넘기면서 건넨 말은 단 한마디였다. 『자,토론합시다 (Let's debate).』 최규장 칼럼니스트.政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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