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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굴레인가 필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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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지난 2월25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한 역사학자 학술토론회. ‘일본해’표기의 부당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사진=월간‘민족21’제공]

◇"민족 없다"=서구에선 20세기 중반부터 논의됐지만 우리에겐 아직 낯선 '탈민족주의'이론이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 1999),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휴머니스트, 2004) 등을 통해 이 이론을 소개하며 '국사(國史) 해체'까지 주장하는 임지현 교수가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를 창립해 소장으로 취임하면서 첫 행사로 '역사의 변경'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마련했다.

이 학술대회는 한국.중국 간에 불거진 고구려사 논쟁을 소재로 탈민족주의 이론을 전파하는 자리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애물단지'로 자리매김된다. 임교수는 "'국경(國境)'은 근대의 발명품이자 국사의 틀이다. 근대의 발명품인 민족.국민이 존재하지 않았던 고구려사에 오늘의 한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욕망을 투영하는 한 '역사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한규 서강대 교수와 영국의 크리스 윌리엄스, 리투아니아의 리나스 에릭소나스, 이성시 일본 와세다대 교수, 호주의 테사 모리스 스즈키, 대만의 왕밍커 교수 등 6개국의 역사학자들이 발표한다.

◇"민족 있다"=남북 역사학자협의회 남측위원회 창립 총회는 민족주의를 확인하는 자리다. 민족주의는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익숙한 이론이고 학계의 주류 담론이지만, 최근엔 탈민족주의론자들에게서 비판받고 있다. 하지만 남북 통일이란 민족적 과제 앞에서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날 제정될 위원회 회칙 제2조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상호 이해 증진, 평화정착과 통일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집행위원장에 내정된 정태헌 고려대 교수는 "조만간 북측위원회도 발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한 역사학자들은 이에 앞서 지난 2월 평양에서 '남북 공동 연구와 학술회의, 상호교류'를 위한 남북 역사학자협의회 설립에 합의했다.

◇열린 민족주의=탈민족주의의 문제의식은 '민족이 개인의 행복에 우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얼마 전까지 입밖에 내지도 못했던 이런 주장이 나온 것 자체가 한국 사회의 다양성과 성숙도를 입증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민족은 상상의 산물'이라는 서구 학계의 주장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그대로 적용할 순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일제 식민지를 겪은 분단국가에서는 민족주의의 '실용성'이 매우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맹목적 민족주의가 가져올 폐해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세계적 보편성과 민족의 특수성를 조화시킨 '열린 민족주의'를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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