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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 ‘한국 두뇌’부터 촘촘히 연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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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 20면

세계화의 마무리 단계는 인력의 이동이다. 재화·자본에 이어 사람이 직접 국경을 넘나들고 사람의 이동에 의해 세계가 하나의 시장, 하나의 경제권으로 보다 촘촘히 얽히게 된다. 이런 현상을 주도하는 것은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라고 할 ‘고급 인재’다.

‘인재 전쟁’의 출발점은

이런 큰 흐름에서 세계 각국은 글로벌 핵심 인재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전기전자공학회(IEEE) 등의 제안에 따라 과학기술 분야에서 학위를 취득한 외국 학생들이 곧바로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이민법을 개정하고 있다. 영국은 무역산업부(DTI) 등 세계 최고의 과학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1억 달러 규모의 새로운 장학제도(로즈 장학금·Rhodes Scholarship) 도입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제11차 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에서 ‘인종·국적·대가(代價) 불문’이라는 인재 유치 3원칙을 공표한 바 있다. 이른바 ‘인재를 둘러싼 전쟁(War for Talents)’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정은 어떤가. 과거 한국은 대만과 더불어 국제사회의 대표적인 ‘두뇌 유입(Brain Gain)’국가로 꼽혔다. 그러나 근래 거꾸로 우수 인력이 한국을 등지는 ‘두뇌의 유실 현상(Brain Drain)’이 심해지고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한국인은 1993~94년을 정점으로 격감하는 반면 취득자 중 미국 내 잔류를 원하는 수는 90년대 후반 이후 급증하고 있다. 스위스 IMD가 집계한 한국의 두뇌 유출 지수는 10년간 크게 나빠져 61개국 중 40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21세기 지식 생성 모형은 네트워크형이다.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두뇌 자원이 어떻게 긴밀하게 연계되느냐가 사회 성원 전체의 지식 생성과 경쟁력을 좌우한다. 이런 맥락에서 중시해야 할 것이 해외교포다. 한국의 해외교포는 660만 명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는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기업·학계·정계 등 각 분야에서 정상급 인재가 많이 배출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한국’이라고 하는 네트워크 구심점과 체계적으로 연계되지 못하고 있다. 현지에서도 독자적인 상층권 인재 네트워크를 형성하지 못한 채 한계화 내지 유민화할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이는 중국·인도가 이른바 화교(華僑)·인교(印僑)라는 자국의 글로벌 인력망을 구축해 본국과 해외 거점, 본국 거주 인력과 해외 거주 인력 간 시너지를 추구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아직 국내의 인력정책은 ‘현재 국내에 있는 우리끼리 하면 된다’는 폐쇄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관련 정책도 교육과학기술부·외교통상부·문화관광부·법무부 등에 산재돼 추진되고 있을 뿐 고급 인재의 국내 유치, 해외 현지에서의 인재 활용, 국내 인재와 해외 인재의 네트워킹 등을 아우르는 정책 밑그림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비자 정책 또는 이민법의 개선, 해외 한인 전문학회의 활성화 및 국내 기관과의 교류 강화, 이민 2~3세대에 대한 언어·문화소양 교육 지원 등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 인력, 해외교포, 나아가 우리의 인력망에 포함할 수 있는 세계 모든 인력을 아우르는 인재 양성·활용의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는 정책 리더십이 절실하다. ‘없는 두뇌’는 그렇다 쳐도 ‘있는 두뇌’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우를 범해선 미래가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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