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틴틴 경제] 우리나라 기름값 어떻게 결정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국내 소비 원유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매일 200만 배럴을 실은 유조선 한 척이 들어오지 않으면 모든 일상 생활과 산업활동이 정지될 정도로 수입 원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기름의 가격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 걸까요.

국내 기름 값은 원칙적으로 정유회사와 주유소가 시장 상황을 판단해 결정합니다. 과거에는 정부가 매월 가격 상한선을 발표했으나 1997년 1월부터 석유산업이 자유화됨에 따라 정유회사들이 휘발유.경유.등유 등 석유의 종류별로 국제 가격과 환율 등을 고려해 국내 기름값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신문에 "국제 유가가 많이 올랐다"는 기사가 실렸더라도 오늘 당장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 가격이 오르지는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정유회사들은 원유 생산회사와 보통 6개월에서 1년6개월 단위의 장기 도입 계약을 맺습니다. 국내 원유의 80%가량을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의 경우 현지에서 생산된 뒤 약 한달간의 수송과 정제기간을 거쳐 주유소에 공급됩니다.

국내 정유회사들은 이달의 국제 유가를 다음달 국내 유가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결정해 왔습니다. 중동산 원유의 대표적인 국제가격 기준으로 통하는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달러 상승하면 ℓ당 13원의 소비자 가격 인상요인이 발생합니다. 이 때 인상된 13원은 이번 달이 아닌 다음달 가격에 한달 늦게 반영됩니다.

가격 변동이 잦아지고 정유회사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SK(주).LG칼텍스정유.현대오일뱅크.인천정유 등 4개사는 지난 2월 중순부터 1주일 단위로 공장도 가격을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공표하고 있습니다.

주유소가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최종 가격이 천차만별이란 점도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가격의 차이를 낳습니다. 주유소는 임대료.시장규모.인근 주유소 숫자.판매량.카드회사와의 제휴 할인.세차 등 부가 서비스 유무 등에 따라 최종 가격을 자체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변수가 환율입니다.

2003년 3월의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27.38달러일 때 국내 휘발유 가격이 ℓ당 1352원이었는데 올해 3월 배럴당 30.78달러까지 뛰었지만 소비자 가격은 1350.78원으로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1년 사이 환율이 달러당 1232원에서 1166원으로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석유협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상승하면 ℓ당 2원의 원가 인상 요인이 생긴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달러 뛰더라도 원화 환율이 달러당 70원 정도 하락하면 인상 요인과 인하 요인이 상쇄돼 유가가 제자리에 머무는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정유회사가 결정할 수 있는 기름값은 소비자 가격의 2%에 그칠 정도로 영향력이 미미합니다. 정부가 매기는 세금의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름 값에는 얼마나 많은 세금과 부과금이 붙어 있을까요.

지난 3월 소비자들은 ℓ당 평균 1350.79원에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었습니다.

이를 기초로 살펴보면 원유 평균 도입가격의 3%(7원)를 관세로 냅니다. 여기에 ℓ당 14원의 수입부과금이 따로 붙습니다. 정부는 국제 유가 변동에 따라 관세와 부과금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방식으로 국내 가격을 조정합니다.

정유회사의 정제 마진을 포함한 공장도 가격(430.46원)에 교통세.교육세.주행세.판매부과금.부가세 등 세금과 부과금 860.85원이 추가됩니다. 이렇게 해서 업체의 유통마진(부가세 포함)을 붙인 뒤 최종 소비자 가격(1350.79원)이 산출됩니다.

결국 지난 3월에 휘발유 가격의 65.68%(887.26원)가 각종 세금과 부과금이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우리처럼 원유 수입국인 일본이 ℓ당 635원(55.4%)의 세금을 물리고 있고, 산유국인 영국의 세금 비중이 76.4%(1273원)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만 세금 비중이 유독 높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한국의 세배나 되는 일본의 휘발유 가격이 ℓ당 1150원이어서 국내 휘발유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분명합니다.

정부의 정책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국제 유가가 오른다는 뉴스가 나오면 자동차 자율 10부제 등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장세정 기자

*** 바로잡습니다

4월 22일자 E11면 '휘발유값 1000원이면 세금 650원' 기사의 그래프에서 두바이유와 무연휘발유 가격이 뒤바뀌었기에 바로잡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