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후지쓰배 세계 선수권] 9집이 날아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준결승>
○·이창호 9단 ●·류 싱 7단

제12보(152∼169)=백 대마의 사활이 패에 걸렸다. 그러나 흑도 이 패를 지는 날엔 우상귀가 쑥대밭이 되면서 전멸의 위기를 맞는다. 생사를 건 패 싸움. 팻감조차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더욱 긴박한 상황. 하지만 화살은 일단 시위를 떠났다.

이창호 9단은 152로 단수했다. 교본에 적힌 대로 가장 적은 팻감부터 쓰고 있다. 한데 류싱 7단, 뒤도 돌아보지 않고 153 때려낸다. 백 대마도 154로 살았다. 금방 산이라도 무너뜨릴 듯 살기등등하더니 정말 싱거운 타협이다. 하지만 매번 속는 일이지만, 고수들의 세계는 거의 이런 식이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이 패의 결과로 백 우세의 형세가 다시 뒤집혔다는 충격적인 계산서가 나오고 있다. 이창호 9단이 탈락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백은 좀더 큰 패를 쓸 수 없었을까. 불가하다. 어제 밝힌 대로 흑은 A쪽 두 개와 B까지 팻감이 모두 3개. 백도 확실한 팻감은 156 쪽의 3개. 백이 하나가 부족하다. 시간이라도 있다면 엷은 흑 모양을 파고들어 팻감을 늘릴 다른 묘착을 찾겠지만 초읽기 탓에 그건 너무 어려운 주문이다. 결국 152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결론.

문제는 형세다. 153으로 따낸 흑은 12집 정도의 이득을 취한 반면 154로 따낸 백은 겨우 3집을 얻었다. 순식간에 9집이 날아간 것이다. 정밀 계가를 마친 젊은 기사들 입에서 ‘흑 우세’라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큰일이다. 바둑은 다 끝나가는데 어디서 부족한 두세 집을 짜낸단 말인가. 이창호 9단이 반상 최대의 C를 둘 겨를도 없이 중앙을 건드려보고 있는 이유도 패배를 직감했기 때문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