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외교, 말이 안 먹혀 … 중동 이어 그루지야 사태도 해결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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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그루지야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국제 위기관리 능력이 또한 번 도마에 올랐다. 다행히 러시아가 발발 5일만에 전쟁 종료를 선언했지만 미국은 러시아군이 그루지야 영토 깊숙이 침공해 들어가는 동안 러시아를 비난만 했을 뿐 사태를 해결하는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11일 워싱턴으로 돌아온 조지 W 부시(사진)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을 통해 러시아에 휴전을 촉구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먹히지 않았다. 러시아는 “그루지야가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에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협정에 먼저 서명해야 한다”며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에선 그루지야 사태를 예방하지 못한 부시 행정부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러시아가 그들의 문턱에서 친서방 정권이 활개치는 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가 최근 몇 달 동안 여러 번 나왔으나 미국은 그루지야와 러시아에 주목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헤리티지 재단의 애리얼 코헨 연구원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그루지야의 주권 회복을 위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다음 제물은 우크라이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퇴진을 5개월여 앞둔 부시 행정부의 무기력증은 그루지야 사태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WSJ는 “이란이 핵 활동을 중단하라는 미국 등의 요구를 거부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추가 협상이나 추가 금융제재만을 거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동맹국인 이스라엘이나 파키스탄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외교정책을 펴거나, 미국의 이익과 충돌하는 조치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그 사례로 시리아에 대한 이스라엘의 평화협상 타진, 대테러 전쟁의 협력자인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에 대한 파키스탄 신임 총리의 탄핵 추진 등을 들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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