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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올림픽과 중국의 갈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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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웅장한 스케일, 현란한 색채, 전통미와 하이테크, 이 모든 것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베이징 올림픽 행사는 세계 40억 시청자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워싱턴 포스트지의 한 칼럼니스트는 런던이 베이징의 이러한 스펙터클과 4년 후 경쟁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라고 선언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같은 화려한 장관을 보고 나서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질문은 이 거대한 중국의 힘이 어디로 향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이 새 시대에 진입했으며 그동안 은인자중 감춰온 빛을(韜光養晦) 이제는 거칠 것 없이 내비칠 것이라고 예고한다.

중국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그들 앞에는 지금 공격적 민족주의와 협력적 민족주의라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냐에 따라 세계·동북아·한반도 질서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몇 달 전 티베트 사태 이후 보여준 중국인들의 공세적 시위는 19세기 이래 서방 제국주의 침략에 당한 중국인들의 깊은 분노를 밑바닥에 깔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중국 민족에 대한 간섭과 주권 침해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실 1949년 중국 공산당의 집권도 이러한 중국인들의 반서방 정서를 활용했기에 가능했다.

중국이 이 같은 분노를 표출하며 공격적 민족주의의 길로 나아갈 경우 국제정세는 대단히 불안정해질 것이다. 중국과 미국은 서로 대결할 것이다.

1870년 통일된 후 급성장한 권위주의 국가 독일이 기존의 패권국인 민주국가 영국에 도전해 제1차 세계대전으로 나아간 것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중국은 인권 증진을 위한 국제 압력에 내정 불간섭을 외치며 반발하면서 군사력 증강에 매진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대 반중국 연합의 대결구도가 형성되고, 불안에 떠는 일본은 미·일 동맹을 강화하면서 재무장을 가속화할 것이다.

중국을 포위하는 미국·일본·호주·인도 등의 이른바 민주주의 연합이나 미국·유럽 간의 협조 전선은 중국과 러시아를 더욱 뭉치게 만들 것이며 동아시아 도처에서 민족주의 갈등과 국경분쟁이 심화될 것이다.

한국은 동맹국 미국과 경제·정치 대국인 중국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다. 북한 핵과 경제, 그리고 남북 간 평화정착 문제들은 미·중 갈등으로 꼬여가면서 미궁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북·중, 북·미 관계가 얼마나 멀고 가까워질지가 문제겠지만 북한도 가운데서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좀 더 긍정적인 시나리오는 중국의 민족주의가 협력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 경우 중국 정부는 민족감정을 자극해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하려 하기보다는 경제적 풍요에 더해 더 많은 정치적 자유를 원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점진적으로 수용해 나갈 것이다.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서방에 대해서도 협조하면서 기존의 국제 제도와 관행을 존중할 것이다. 그래야 고속성장이 가능하고 13억 중국인들을 만족시켜 정치 통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에서는 미·중·일 3각 협력관계가 정착되고 경제 협력이 심화되며 안보 협력을 위한 국제 메커니즘도 강화될 것이다. 한국은 동맹국 미국과 동반자 국가 중국 간의 협력 분위기에 힘입어 북한 문제를 풀어나가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27배의 인구, 97배의 영토를 가진 중국과 운명적으로 이웃하며 살 수밖에 없다. 중국이 어느 길로 가든 그 영향은 한반도에 계속 밀려올 것이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그렇다면 한국은 당연히 중국보다 더 기민하고, 유연하고, 단합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유럽 대국들에 둘러싸인 네덜란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실상 중국보다 느리고, 경직되고, 분열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유독 필자뿐일까?

한국보다 훨씬 ‘자본주의적’이라는 중국을 이웃에 두고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규제 완화와 협력적 노사관계를 외쳐왔지만 별 진전이 없다.

냉전은 이미 반세기 전 이야기로 돌리고 21세기의 주도권을 향해 매진하는 중국을 옆에 두고, 우리 국내에선 좌파·우파 이념 전쟁이 한창이다. 지금 한국의 시계는 몇 시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윤영관 서울대·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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