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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본 투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은행나무 침대』와 같은 사랑영화들이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오랜만에 흥행 판도를 바꿔 놓을 만한 국산액션영화 한편이 나왔다.20일 개봉되는 장현수 감독의 『본 투 킬』이 그것.장감독은 92년 데뷔작 『걸어서 하늘까지』로 멜 로적 재능을인정받았고 94년에는 『게임의 법칙』으로 한국액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은 인물이다.『본 투 킬』은 그가 멜로와 액션에서의 두가지 성과를 한꺼번에 거머쥐겠다고 내놓은 야심작이다.그만큼 제작진 구성도 만만찮다.『개 같은 날의 오후』를 만든순필름(대표 이순열)이 제작자로 나섰고 『서편제』의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 낸 정일성씨가 촬영감독을 했다.그리고 10대와 20대에 특히 인기가 있는 정우성.심은하가 남녀주인공으로 캐스팅됐고 김학철.명계남.조 경환 등 개성있는 인물들이 조연으로 등장했다.그 결과는 안데르센의 우울한 동화와 하드보일드 소설이공존하는 액션멜로물로 나왔다.
영화는 킬러 「길」(정우성)이 청부받은 목표물에 테러를 가하는 「아름다운」 푸른색 화면으로 시작된다.안개비가 내리는 한 유흥가의 주차장 건물에서 승용차를 응시하던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목표물에 접근해 발로 유리창을 부수고 칼로 눈 알을 뽑는 일을 무표정하게 해낸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이런 충격적인 액션장면이 이어진다.특히 3억원을 투입한 마지막의 나이트클럽 결투장면은 때리고 찌르고 부수는 액션이 8분간 계속된다.이 하드보일드한 세계의 킬러가 「길」이다.그러나 그의 성격은 동화적 세계에 설정돼 있다.그는 어린시절 철로에 누워 동반자살하려는 엄마의 손을 깨물고 혼자 살아남은 깊은 상처를 갖고 있다.그의 정신적 성장은 여기에서 멈추고 그는 유년에 자폐된 인물로 살 수밖에 없다.그의 유일한친구는 집에서 키우는 원숭이고 은행 에 가기 싫어 돈은 냉장고에 쌓아둔다.이런 그가 유일하게 애정을 느낀 인간이 가수의 꿈을 안고 상경했다 호스티스가 된 수하(심은하)다.그는 『모래시계』의 이정재가 고현정을 대하듯 순정적 태도로 대한다.
「남에게는 난폭한 킬러,나한테는 귀여운 아들」인 이런 성격유형은 이미 『레옹』에서 보여준 바 있다.그러나 이 영화는 「길」의 성격을 한국적 정서와 가족사적 맥락에서 설득력있게 찾아내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우울한 동화로 연결시킨다.여 기에는 싸늘함과 귀여움과 짙은 우수를 버무려 놓은 정우성의 비빔밥 연기가큰 역할을 했다.「길」은 좀처럼 죽지 않는 액션영화의 주인공인데도 마지막에 난자당한채 숨을 거둔다.개봉에 앞서 가진 대학생시사회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처음에는 비명을 지르다 나중에 우는 여대생이 많았다는 것.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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