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돈만 축내는 김일성 찬양광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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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매년 2월과 4월만 되면 마카오의 북한대표부격인 조광(朝光)무역공사는 중국어신문인 다중바오(大衆報)의 1면에 컬러 전면광고를 낸다.
벌써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같은 연례행사는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됐다.지난 2월16일 김정일(金正日)의 생일에 맞춰 사회주의이념을 강조하는 정치광고를 냈고 4월15일 김일성(金日成)생일엔 컬러사진만 8장이 들어간 김일성 찬양광고 를 실었다.
다중바오의 1면 컬러 전면광고 단가는 4만5천홍콩달러(약4백50만원).한국입장에선 대수롭지 않은 돈일지 모르나 한푼의 외화라도 더 벌기 위해 웅담을 싸들고 살 사람을 찾아다니는 마카오내 북한상사들의 입장에선 큰 부담이다.
지난해 북한 수재민을 돕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홍콩 가톨릭계 자선단체인 카리타스-홍콩의 카티 젤베거 여사는 2.80홍콩달러만 있으면 북한의 초등학교 어린이 한명의 1주일치 도시락용쌀 1㎏을 태국에서 살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그럼 조광공사가 기대하는 광고효과는 어느 정도일까.다중바오는8면 가량에 부수는 1만부에 불과한 작은 신문이다.17일 오전기자와 통화한 조광공사 관계자의 주장처럼 『광고가 아니고 주석님의 선전』을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마카오내 최대 일간지 마카오데일리(澳門日報)에 광고를 게재했어야 옳다.과연 조광공사의 광고목적은 무엇일까.
마카오의 북한전문가들은 이 광고가 북한당국의 지시라기보다 김정일에게 잘 보이기 위한 조광공사의 충성경쟁 때문이라고 풀이한다.광고단가가 싼 다중바오에 광고를 낸 뒤 이를 「실적」으로 챙겨 당에 보고한다는 것이다(10만부 발행의 마카 오데일리 1면 컬러 전면광고 단가는 9만홍콩달러다).
이같이 돈 까먹는 광고의 「실적」은 마카오내 북한상사들의 진짜 「실적」인 경영상태가 나쁠 때 더욱 애용된다는 것이 이곳 전문가들의 분석이기도 하다.부질없는 충성경쟁에 북한동포들만 더욱 배를 곯고 있는 셈이다.
유상철 홍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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