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파생상품, 너만 아니었어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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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미국은 왜 신용불량국가가 되었을까?
찰스 R.모리스 지음, 송경모 옮김,
예지, 294쪽, 1만3800원

닌자(NINJA)라고 하면 대부분 변장과 은신에 능한 일본의 자객을 떠올릴 게다. 그러나 금융전문가들은 다른 의미로 쓴다. 무소득에 직업 없고 자산 없는 사람(No Income, No Job, No Asset)들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뜻한다. 세계를 신용위기 태풍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불량주택담보대출)가 이런 것이다. 이게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신용불량자에게조차 돈을 빌려줬기 때문이다. 금융사가 제정신이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금융시스템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일어났을까. 또 전체 모기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남짓 밖에 안 되는 서브 프라임의 부실이 어떻게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런 의문에 답하고 있다. 주범은 바로 금융시장의 꽃이라 불리는 파생상품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파생상품의 순기능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지나치게 비대해진데다 금융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엄청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사들이 ‘닌자’에게 돈을 빌려줄 때 떼일 위험을 생각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그 대출을 대출담보증권이나 부채 담보증권등의 파생상품으로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위험을 크게 줄이고 있는 것이다. 위험은 작고 수익은 많은데 누군들 이 장사를 마다할까. 최소한의 조사마저 생략하고 돈을 빌려주기 위해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 과정을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수많은 파생상품의 기본재산이 되면서 전체 금융시장을 흔들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집값이 떨어지고 닌자들이 원리금을 제때 상환하지 못할 경우 미국이 신용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는 얘기다.

또 예전 같으면 정부가 달러를 풀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형편도 안된다. 달러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져 있어서다. 미국이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자 중국은 자신들의 달러 자산을 ‘핵폭탄 투하’하듯이 투매해 미국 경제를 뒤흔들어놓겠다고 되받아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 용어들이 많아 다소 어렵겠지만 최근 신용위기의 본질에 대한 정리가 잘돼있어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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