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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논단>현실 모르는 投信業 규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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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는 신설 투신사들의 업무에 대해 정상영업이 어려울 정도로 필요이상의 제한을 가해 투신진출을 추진중인 증권사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투자신탁(투신)은 간단히 말해 「고객 돈을 대신 굴려주는 일」이다.따라서 투신의 핵심은 유능한 펀드매니저들을 고용,고객이기대하는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다.투자결정이 투신사에 일임되기 때문에 여러가지 안전장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 만 이와 무관한 규제가 한 둘이 아니다.
이같은 규제의 대표적인 것은 우선 10대 그룹 계열증권사는 단독으로 투신사를 만들 수 없도록 한 것.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을 막는다는 것이 구실이지만 이는 투신사를 「금융기관」으로 보는 무지에서 나온 규제다.다른 증권사.은행.보험 사와 합작으로 설립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공동출자로 실패한 경험은 기존투신사로 족하다.근 1년동안 합작선을 잡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증권사들이 안쓰럽게만 보인다.대외개방을 앞두고 정부가 부르짖고 있는 국내산업의 경쟁력 배양은 어느새 뒷전으로밀려난 느낌이다.
자본금 3백억원이 있어야 투신사 설립허가를 내주겠다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다.금리를 10%만 잡아도 30억원은 돼야 금융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데 운용보수 1%를 받는다고 칠때관리자산이 최소한 3천억원은 돼야 겨우 이 비용 을 회수할 것이다.물론 인건비.임대료.전화료등을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많아야 한다.게다가 수익증권의 판매잔액을 자기자본의 50배로 제한한 것은 신설 투신사의 발목을 처음부터 잡자고 하는 발상이나 다름없다.정부는 고객보호를 위해 필요 하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회사 돈과 고객 돈은 엄격히 구분돼 있고 고객 돈은 현금이든 유가증권이든 관련기관에 보관돼 있어 극단적으로 말하면 투신사가 망하더라도 그것은 주주의 문제이지 고객과는 상관이 없다.미국에서 관리자산이 1 억달러(8백억원)면 작은 편이 아닌데 이런 투신사의 자본금은 얼마 되지 않는다.직원 1천5백명을거느린 유럽 제1의 투신사인 머큐리 애셋 매니지먼트는 자기자본의 무려 2백50배에 해당하는 1천억달러(78조원)이상을 관리하고 있다.
또 운용과 판매를 분리한 것도 투신업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한 것이다.외국의 투신사들은 대부분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한 뮤추얼펀드(환매가능한 수익증권)와 연.기금을 포함한 기관 및 거액개인투자자를 상대로 한 자산관리(일임을 전제로 한 자문)를 동시에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투신협회부터 서둘러 만들어 회장을 선임하고 회원사들의 의견 한번 물어보지 않고 많게는 수억원의 협회비를 정한 것은 염불엔 뜻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싶다. 증권사들이 이런 불합리를 무릅쓰고 투신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유는 기회가 있을때 일단 저질러놓고 보자는 규제만능시대의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권성철 본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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