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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스머프 마을은 마르크시즘 공동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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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마크 슈미트의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
마크 슈미트 지음, 김지양 옮김
인간희극, 204쪽, 8500원

깜찍한 책이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아담한 사이즈에 ‘브로크백마운틴’과 ‘사우스파크’의 동성애 문제, ‘해리포터’의 유전학과 운명론, ‘스타쉽 트루퍼스’와 군국주의 등까지 소재로 삼았다. 정색하고 쓴 대중문화 분석서는 아니지만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대중문화의 이면을 읽어냈다. 첫 장의 제목이 ‘스머프에 나타난 정치, 사회적 테마’다.

저자는 만화 ‘개구장이 스머프’가 마르크시즘에 대한 우화라고 ‘폭로’한다. 그에 따르면 스머프 마을은 사회주의자들이 꿈꾼 공동생활체, 코뮌의 완벽한 전형이란다. 자급자족하며, 토지를 공동 소유하는 것도 그 증거다. 또 파파 스머프의 덥수룩한 수염은 공산주의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를 연상시키고, 똘똘이 스머프는 트로츠키를 연상시킨다(이들 캐릭터와 사진을 비교해보니 실제 그렇게 보인다!)고 주장한다.

이 마을엔 돈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큰 자본인 댐만 존재하는데 마을공동체가 이를 함께 소유· 운영하고 있는 것도 혐의를 더욱 짙게 하는 요인이다. 스머프끼리는 서로를 ‘똘똘이 스머프’ ‘게으름이 스머프’ 식으로 서로를 ‘스머프’라 부르는데, 이는 ‘동무’란 호칭을 연상케 한다. 탐욕스럽고 무자비하며 재산 축적만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마법사 가가멜은 극단의 자본주의자를 상징한다.

저자는 “만화원작자인 벨기에 작가 페요가 공산주의였다는 실질적인 증거는 없다”면서도 “1980년대 반공교육에 열 올린 많은 자유주의 국가들이 이 만화에 멋지게 속아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두 세계관(자연지향적이며 낭만적인 세계와 도시·상업지향적이며 비관적인 세계)의 충돌로 읽었다. 한편 한국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포괄적으로 하나의 핏줄로 연결된” 남북한간의 복잡다단한 ‘형재애’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로 꼽았다. 이 책은 호주 출신의 저자가 지난 10년 한국과 일본·독일 등지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틈틈이 쓴 에세이다. 중간중간 그다지 동의하지 못할 내용도 없지 않지만 슬쩍 농담을 던지듯 힘주지 않으면서도 뚜렷한 자기 시각을 담은 점은 매력으로 꼽을 만하다. 원제 『Secrets of Popular Culture』.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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