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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故宮보물 뉴욕 첫 나들이-중국예술품 미국인 사로잡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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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대만해협을 사이에 놓고 중국이 벌인 대규모 군사훈련이나 대만총통선거같은 북새통과는 전혀 종류가 다른 관심이 뉴욕미술계를 달구고 있다.
바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지난 19일 개막한 『중화제국의 광채-대만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의 보물전』을 향한 눈빛이다.
개막 첫날 3천6백여명이 다녀간 이 전시는 사상 최대규모의 중국미술전이라는 점과 전시가 이뤄지기까지의 무성한 뒷얘기로 화제가 되고 있다.
전시되고 있는 작품은 4백50점.
기원전 15세기에 만들어진 벽옥(璧玉)에서부터 청동제기(靑銅祭器),전설적인 서예.회화작품,그리고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을 것같지 않은 정교한 공예품까지 약3천년의 중국역사가 담긴 예술품들이다.
이중 대다수는 지금껏 중국 밖으로는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것들이어서 메트로폴리탄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동양의 신비로움을 한층 더해주고 있다.
전시는 중국 국공(國共)내전 당시 자동차와 배로 예술품을 안전한 곳에 옮기는 장면을 찍은 거친 흑백사진으로부터 시작된다.
청나라 건륭제(乾隆帝)가 모았던 60만점의 보물이 장개석(蔣介石)에 의해 2만개의 나무상자에 싸여 1931년부터 16년간전쟁을 피해 이리저리 떠돌다가 대만으로 옮겨지는 과정이다.
본격 전시는 은.주(殷周)시대의 옥공예와 청동기부터 펼쳐진다. 이어서 서성(書聖)이라 불린 왕희지(王羲之)의 『평안첩(平安帖)』과 평생을 자연속에서 술을 즐기며 살았던 초서(草書)의대가 회소(懷素)가 쓴 『자서(自敍)』가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발길을 옮기면 중국회화의 명품들이 줄을 이어 기다리고있다. 문동(文同)의 『묵죽도』,이당(李唐)의 『만학송풍도(萬壑松風圖)』,하규(夏珪)의 『계산청원도(溪山淸遠圖)』,마린(馬麟)의 『병촉야유도(秉燭夜遊圖)』,조맹부(趙孟부)의 『작화추색도(鵲華秋色圖)』,황공망(黃公望)의 『부춘산거도(富春山 居圖)』,대진(戴進)의 『춘유만귀도(春遊晩歸圖)』,심주(沈周)의 『책장도(策杖圖)』,구영(仇英)의 『한궁춘효도(漢宮春曉圖)』,예찬(倪瓚)의 『용슬재도(容膝齋圖)』,낭세령(郎世寧)의 『백준도(百駿圖)』등.
한점 한점이 모두 중국회화의 정수(精髓)로 수백권도 넘는 중국회화 관련책자에 명품으로 등장했던 것들이다.
특히 조용한 중국산수화의 세계는 반 고흐나 렘브란트처럼 빛과색깔.구도가 완벽한 그림의 표면읽기에 길들여있는 미국인들에게 분명 낯선 경험같아 걸음을 오래도록 머무르게 한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는 『아우성치듯 자신을 드러내는 우리들에게 이 그림은 거의 침묵에 가까운 소리를 조용히 들려준다』고 평하며 『이 전시가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외에 남송 용천요(龍泉窯)에서 만들어진 용문양의 손잡이가 달린 청자병과 명.청대의 백자.청화백자같은 정교한 도자기 역시관람객들의 마음과 혼을 사로잡는다.
메트로폴리탄의 전시는 5년전부터 기획됐지만 대만국민들의 거센반대로 올초까지만 해도 전시여부가 불투명했었다.
그래서 처음에 4백73점이었던 전시리스트에서 23점이 제외됐다. 대만에서조차 3년에 단 40일간만 일반에 공개되는 중요한작품들을 1년 가까이 미국에 놔둘 수 없다는게 몇몇 작품을 뺀이유였다.또 클린턴 미대통령이 전시가 끝나는대로 모든 작품들을중국으로 돌려주고 대만에는 복제품을 보낼 것이라 는 악성루머도떠돌아 문제를 복잡하게 했었다.
결국 중국회화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범관(范寬)의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와 곽희(郭熙)의 『조춘도(早春圖)』가 카탈로그에만 수록되고 전시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명.청의 도자기 일부도 끝내 소개되지 못했다.
또 현재 전시중인 작품도 작품보존을 위해 전시기간중 다른 작품으로 교체될 예정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주 일요매거진에 12쪽을 할애해 난산을 거듭한 이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는데,미술관을 교육과 체험의 장으로여기는 미국에 비해 대만인들은 역사적 유산을 돌보는 보관장소로여긴다는 시각 차이로 이를 설명했다.
경위야 어찌됐든 메트로폴리탄을 찾는 많은 관람객들은 시끄러운중국문제와 달리 중국의 화려한 과거를 상징하는 미술품들에 깊이매료되고 있다.
이 전시는 5월19일까지 메트로폴리탄 전시를 마치고 시카고미술관(6월29일~8월25일),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10월14일~12월8일),워싱턴 내셔널갤러리(97년 1월27일~4월6일)로 순회전시될 예정이다.
뉴욕지사=이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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