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대반전’ 두 정상이 통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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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31일 청와대에서 방한 중인 셰이크 나세르 쿠웨이트 총리(左)를 접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양국 간 에너지협력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사진=오종택 기자]

미국 지명위원회(BGN)의 독도 영유권 표기가 원상회복됐다. 지명위는 지난달 30일 오후(한국시간 31일 오전)부터 웹사이트인 지오넷의 외국 지명 사이트에서 독도의 영유권 표기를 ‘한국(South Korea)’과 ‘공해(Oceans)’로 나란히 표기하기 시작했다. 지명위는 지난달 22일 독도를 ‘주권 미지정(Undesignated Sovereignty)’ 지역으로 변경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번 조치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독도 영유권 표기를 이전 상태로 되돌려 놓도록 지시한 뒤 곧바로 이뤄졌다. 부시 대통령은 30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으로부터 독도 표기 문제에 대한 검토 결과를 보고받은 뒤 원상회복 방침을 결정했다. 이어 부시 대통령은 제임스 제프리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을 통해 결정 내용을 이태식 주미대사에게 통보했다. 다만 지오넷에 나오는 독도의 표준 명칭은 ‘독도’ 대신에 1977년 7월 14일 채택된 ‘리앙쿠르암(岩)’이 계속 사용된다.

독도 영유권 표기의 원상회복을 지시한 부시 미국 대통령(右)이 지난달 30일 각료회의를 끝낸 뒤 백악관 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이 대사는 “부시 대통령이 직접 결정을 내렸고, 그것을 즉각 시행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한·미 동맹 복원과 신뢰 회복의 결과”라며 “부시 대통령이 한국민의 정서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양 정상 간의 깊은 신뢰와 우정이 반영된 결과”라고 환영했다. 이번 조치엔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는 시기적 변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독도 표기 변경 파문은 5∼6일로 예정된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열흘 남짓 앞두고 터졌다. 한·일 간 독도 문제가 한·미·일 3국 간 문제로 확대되면서 쇠고기 파문 때의 반미 정서가 확산될 위기였다. 또 부시 대통령의 방한과 정상회담이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감대가 양국 정부에 형성됐다. 이후 위기를 급반전시킬 수 있는 ‘정상회담의 정치’ 시스템이 가동됐다. 이후 양국은 ‘배수의 진’을 치고 총력전을 펼치게 된다.독도 표기 변경 파문 직후 청와대에서 먼저 제기된 외교라인 문책론은 결과적으로 우리 외교부와 주미대사관으로 하여금 ‘자기 목을 걸고’ 대미 외교전을 펼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김성환 외교안보수석과 백악관 NSC 라인 등 공식 라인 외에 민간 라인까지 총동원됐다. 세계지리학회 사무총장인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까지 청와대의 권유로 미국에 급파돼 미국 내 전문가들을 접촉했다.

최종 결단은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내렸다. 과거 카터·레이건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가능성을 내비치다 정상회담장에서 ‘선물’차원에서 이를 철회한 일은 있었다. 하지만 정상회담 이전에, 또 다른 동맹국인 일본의 이해까지 걸려 있는 사안에 미국 대통령이 이 같은 결단을 내린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외교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부시 대통령은 촛불 시위를 겪으면서도 쇠고기 협상을 신속히 처리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빚을 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등 진보진영의 지도자들과 대면하며 어려움을 겪었던 부시 대통령은 ‘모처럼 들어선 보수정권과 이 대통령이 코너에 몰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이날 정부와 한나라당은 당정회의를 열어 ‘리앙쿠르 록스’로 명기돼 있는 미국 주요 정부기관의 독도 표기를 ‘독도’로 변경하는 데 주력하기로 하는 한편 독도의 영문표기를 ‘Dokdo’로 단일화하기로 했다.

글=워싱턴=강찬호 특파원, 서승욱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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