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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칼럼>전준수씨 카라비너 추락사고 원인규명 철저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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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등산장비중 카라비너(Karabiner)라는 쇠고리가 있다.스프링으로 작동되는 여닫이가 있어 등반할 때 추락을 막기 위한 확보지점에 로프를 끼워넣는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장비다.
이 고리가 등산에 처음 사용된 시기는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뮌헨의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에 사용하던 서양배 모양의 클립을 독일 산악인 오토 헤르초크가 등산에 사용한 것이 그 효시다.처음에는 무거운 강철고리를 사용하다 41년 가볍고 강한 알루미늄합금으로 개량됐다.
진화작업에 사용되던 쇠고리는 등산에 이용되면서 위험으로부터 산악인의 목숨을 구해왔다.그러나 이 고리가 화근이 돼 목숨을 잃은 경우도 여러차례 있다.
72년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카라비너로 인수봉을 올랐던 한 산악인은 실족하면서 카라비너의 여닫는 장치가 열려 불귀의 객이됐다. 81년에는 알프스 아이거봉 등반중 카라비너에 번개가 쳐불벼락을 맞고 목숨을 잃은 산악인도 있다.산악인의 안전을 위해사용되던 이 장비가 죽음의 연결고리로 둔갑한 일은 너무나 역설적이다. 지난해 여름 이 고리의 여닫는 장치가 열리며 목숨을 잃은 의문의 사고가 일어나 산악계에 충격을 주었다.지난해 6월30일 아이거등반을 마치고 하산하던 전준수(당시 40세)씨는 차고 있던 벨트와 로프를 연결한 카라비너의 여닫이장치가 열린 채 7백여를 추락해 사망했다.사용자의 조작실수인지,제품 자체의결함인지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다.당시 사용한 카라비너는 미국산으로 여닫이가 열리는 것을 막아주는 자동잠금장치가 돼 있었다. 또한 같은 회사제품중 B라는 카라비너도 지난해 국내에서 사용도중 파손됐던 일이 있다.
아이거 사고 당시 구조에 참여했던 스위스 산악경찰에 의하면 『추락현장에서 전준수씨의 카라비너 여닫이가 「열린 채」로 발견됐다』고 말했다.이러한 사실은 사망자 시신이 안치된 장소에서 동료들도 직접 확인했다.그러나 카라비너는 사용하기 전 후배 산악인들이 손질했기 때문에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장비 결함에 대한 규명마저 모호하게 만들었다.
국내에 보급된 이 회사 제품의 나머지 카라비너중 혹시 재발될지도 모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아이거 사고는 미궁에 묻히기전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국내 수입상이나 판매상들은 과대광고에만 치우치지 말고 기능상의 취약점,취급상의 주의점도 충분히 고지해야 한다.
장비제조업체의 팔기만하면 된다는 식의 그릇된 상혼에 대해「사용방법및 주의사항」고지의무 소홀을 이유로 들어 제조업체에 패소판결을 내린 미국 법원의 판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용대〈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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