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센카쿠, 쿠릴은 놔두고 왜 독도만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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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지난해 8월 독도 이외의 다른 영토 분쟁 지역도 ‘주권 미지정 지역’ 변경 결정을 내리고도 독도의 경우만 관련 사이트에 게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러·일 간의 분쟁 대상인 쿠릴열도에선 기존의 ‘러시아령’이 빠졌다.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중국과 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BGN의 사이트에서 이 지역은 아직 러시아령, 일본령으로 분류되고 있다고 한다. 그 점에서 볼 때 이중 잣대라고 비난받을 만하다.

한국의 독도 영유권 삭제에 관한 한국 측 질의에 BGN은 “1977년 독도를 리앙쿠르 암석이라고 표기키로 한 정부 정책에 부합하도록 단순히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 국무부도 “BGN이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라 미국 원래의 입장대로 일관성을 지키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만으로는 납득이 안 된다. 왜 하필 독도만 건드렸느냐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겠다면 똑같이 분류된 다른 분쟁 지역도 한번에 묶어서 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는가. 30여 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 와 행동을 취했느냐는 핵심 의혹에 대해서도 미국은 아무런 해명을 못하고 있다.

미국이 후속 조치로 쿠릴열도 등 다른 분쟁 지역의 관할권 변경을 사이트에 게시할지는 미지수다. 설사 미국이 그렇게 한다 한들 우리의 요구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쿠릴이나 센카쿠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다.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이 재명기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요구다.

우리는 미국에 독도 문제에 한국편을 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미국이 독도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명징한 인식을 갖기만을 바랄 뿐이다. 겉으론 ‘중립’을 내세우면서 실상은 그렇지 않은 애매모호한 태도만은 버려달라는 것이다. 특히 명색이 혈맹이라면서 상대국의 영토 문제에 관한 일을 놓고 아무런 협의 없이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경솔한 행위였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