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발굴만이 능사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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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작고한 고고학자 김원룡(金元龍)박사는 박물관장으로 재직했던 71년 당시 백제의 처녀무덤이라 할 무령(武寧)왕릉을 발굴한다.그가 관뚜껑을 여는 순간 섬광처럼 깊은 회한(悔恨)이 그의 가슴을 관통한다.「빨리 관뚜껑을 열어라」는 열화같 은 여론의 독촉에 밀려 그는 몇달 몇해가 걸려야 할 고분발굴작업을 단 이틀간의 밤샘작업으로 끝내야 했다.金박사는 당시의 죄책감과 수치심을 『고고학자의 여한』이라는 수상록에 남기고 있다.
경주 사라리 130호 고분에서 신라 성립기의 귀중한 유물이 다량으로 쏟아졌다.기원전후 1세기,청동기문화에서 철기문화로 옮겨가는 시기의 귀중한 유물자료가 발굴됐다.이 발굴기사를 읽으면서 우리는 왜 金박사의 회한을 되새기는가.
130호 고분 자체가 한 자동차 부품회사의 공장부지 공사중 발견된 고분군이다.불도저로 그냥 밀어붙였다면 2천년 역사유물은흔적없이 사라졌을 것이다.경주는 그 자체가 유물의 보고다.이 때문에 보존과 보호를 주장하는 것이다.그런데도 실상은 어떤가.
관광수입을 올리기 위해 경마장 건설이 추진중이고,고속철도가 경주시가를 관통하게 돼 있다.귀중하고 아까운 우리의 역사유산이 언제 또 소리없이 사라질지 예측할 수 없다.
金박사가 한을 품었던 그대로 지금 무령왕릉은 졸속 발굴과 보존미숙 탓으로 무덤은 습기에 차 훼손되고 있다.발굴은 쉽고,유물을 보는 즐거움은 잠시다.가장 확실한 문화재보존이란 있는 그대로 원형을 살리는 길이다.굳이 필요에 따라 발굴 한다면 발굴자체가 신중해야 하고,그 뒤처리와 보존상태가 완벽해야 한다.발굴하고 돌아서면 방치하는 문화재관리가 더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130호 고분에서 거듭 확인하듯 경주와 부여는 2천년 우리 역사가 고이 간직된 문화재 보고 지역이다.한 고고학자의 여한(餘恨)이 아니라 민족과 역사에 죄를 짓는 회한이 되지 않도록 경주 개발사업은 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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