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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하고 속으로만, 만성골반통

중앙일보

입력

만성골반통은 산부인과를 찾는 환자의 10~ 20%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유병율을 가지는 질환이다. 그러나 만성적인 통증은 있지만 병의원에서 일반적인 검사를 해보면 뚜렷한 병인이나 질환이 없는 경우가 많아 환자는 오랜 시간 참고 견딘 후에, 더 이상 통증을 견딜 수 없게 되면 보통의 치료제인 진통제등을 복용하게 되고 호전이 안 되면 대부분의 병의원에서 골반염으로 진단하고 항생제 치료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약40~50%) 대부분 호전되지 않고 효과를 얻지 못하게 되면 여러 병원을 찾게 된다. 이렇게 정확한 진단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복적인 병원방문과 검사나 수술 또는 약물치료 등을 받게 되니 통증이 줄어들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되고, 이로 인하여 우울증과 불안증을 얻게 되고 이런 심리적인 변화 때문에 다시 통증이 악화되는 악순환을 경험하게 된다.

결혼하고, 애 낳고도 이어지는 통증

만성골반통 환자는 의외로 많다. 영국의 경우 17~73세의 여성에서 만성골반통의 빈도는 3.8%, 가임기 여성에서는 더욱 흔해 15%의 빈도를 차지한다. 이러한 빈도는 편두통(2.1%) 보다 흔하며 천식(3.7%)이나 요통(4.1%)의 빈도와 유사하다.

외국에서는 20대에서 30대가 주로 많으나 실제 경희의료원 산부인과에서 2006년 수술한 골반 내시경시술 459건 중 157건(43.2%)이 만성골반통 때문이었으며 40대가 가장 많은 49%, 30대가 32% 순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만성골반통이 주목받지 못한 것은 애매한 증상과 진단기술의 한계 때문. 그러나 내시경의 등장과 자궁내막증에 대한 연구가 급진전하면서 최근 들어 골반통의 원인과 발병 기전이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만성골반통은 증상이 모호해 진단이 쉽지 않다. 자궁. 골반 주변에는 다른 부위에 비해 신경이 적게 분포하기 때문. 배꼽 아래복부에 묵직한 둔통이 있고, 꼬리뼈나 양쪽허리 통증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골반통환자의 약 90%에서 요통이 나타나고 방광자극. 배뇨 시 통증 등 방광 증상이 80%에서 나타나며, 60%에서 환자는 두통을 호소하고 흔한 증상으로는 질 분비물 증가를 호소한다. 그 외에 불면증. 피로감등을 호소한다.

만성골반통은 의학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미정복 분야
골반 통증을 느끼는 환자의 60%는 한쪽에서, 40%는 양쪽 또는 전반적인 골반부 통증을 느끼는 것도 특징이다. 변비나 묽은 변과 함께 복통과 같은 소화기 계통의 증상이 나타나서 과민성대장 증후군과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도 상당수가 있어서 각별 진단이 필요하다.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리다 보니 불안증이나. 우울증. 피로감등으로 가정 또는 직장생활에 지장을 초래하여 사회문제화 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증상 때문에 만성골반통 전문센터를 찾아오기 전까지 환자들은 산부인과는 물론이고 내과와 정형외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통증클리닉 등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원인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몇 년씩 고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울 엄마, 웬만하면 참는다
증상만큼 원인질환도 다양하다. 가장 흔한 것은 부인과질환. 특히 자궁내막증, 수술 후유증에 의한 골반 내 유착증, 자궁근종. 난소 잔류증후군 등이 대표적인 질환이다. 다음은 정신적인 원인. 스트레스 상황을 맞으면 자궁이 비정상적인 수축을 하고, 이로 인해 자궁과 자궁주위의 혈관 내에 혈액이 정체돼 울혈 상태가 되거나, 생리혈 내에 핏덩어리가 섞여서 배출되고 생리혈이 골반 간 내로 역류하게 되거나 자궁근육 내로 침투하게 되어 만성적인 통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재발성 방광요도염, 요도증후군, 간질성 방광염 등 비뇨기계 질환도 문제를 일으킨다. 만성골반통 환자에서도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근막동통증후군 등도 자주 동반되어 나타나는 질환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 여성들은 이런 만성 골반통을 질병으로 생각하지 않고 단순한 증상으로 생각하여 초기에 관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성골반통증센터의 자료에 의하면 통증 발생 이후, 50%이상의 여성들이 2년 후에야 만성골반통센터를 방문한 것으로나타났다.

이와 함께 특이한 점은 설문지를 통해 시행한 우울증 검사 결과, 73.2%에 해당하는 환자에게서 우울증 증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중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공한 3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남편과의 문제가 52.9%로 제일 많았고 이어 어려운 가정 경제가 23.5%, 시댁과의 갈등, 자녀 문제, 직장 및 사회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 본인의 오래된 지병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특히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외도, 술, 대화부족, 일반적 결정, 늦은 귀가 등이 지적되고 있다.

30-40대, 자궁 내막증과 골반울혈증후군이 만성골반통 주된 원인
30~40대 주부들이 출산 후 흔히 겪는 만성 골반통의 가장 주된 원인은 자궁내막증(선근증포함)과 골반울혈증후군이다.

자궁 내막증은 월경 시 역류되는 월경혈에 의해서 자궁내막의 절편이 자궁 이외의 장소에서 자라면서 월경과다와 심한 월경통 및 자궁의 부정출혈을 일으키며 심할 경우에는 불임까지 이어질 수 있는 질환이다.

동서신의학병원 만성골반센터 연구팀은 혈관을 전문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색도플러 초음파 검사와 난소정맥조영술을 통해 검진한 결과 골반울혈증후군이 간과하기 쉬운 주된 원인 중 하나임을 밝혀냈다. 골반울혈증후군은 정맥 내의 혈류가 심장방향으로 흐르게 도와주는 정맥판막이 선천적으로 이상이 있거나 출산 등으로 손상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서 있거나 허리를 구부릴 때 정맥이 하부로 역류하여 부풀어 오르면서 자궁 및 난소 주변부에 울혈을 일으키며 만성골반통을 야기하는 것이다.

새로운 치료법인 난소정맥색전술은 대퇴부 정맥을 통해 혈류가 역전되는 난소정맥까지 가는 관을 삽입하고, 정맥의 혈류를 차단하는 특수한 색전물질인 금속 코일을 정맥 안에 설치하는 시술법이다. 난소정맥을 막아 골반 정맥으로 피가 몰리는 것을 없애준다. 수술적으로 난소정맥을 제거하지 않고 30 ~ 60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국소 피부마취상태로 간단히 시술할 수 있다고 한다.
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 영상의학과 남덕호 교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골반통으로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거나 진통제를 복용해야 할 정도의 통증이 있다면, 단순한 자궁염증으로 오인하거나 건강염려증으로 방치하기보다 골반울혈증후군이 아닌지 정확히 검사해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갱년기, 만성골반통 검진 필요

지난 달 25일 한 다국적제약사가 아시아 지역 7개국의 40~65세 여성 31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서 현재 갱년기 증상을 적절하게 치료하고 있는 여성은 전체 조사대상의 4%에 불과했다. 조사에 참여한 여성들 중 절반가량은 폐경이 고혈압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지난 해 경희의료원의 만성골반통증센터에서 시행했던 조사 결과도 우리나라 여성들의 갱년기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시행했던 무료검진 이벤트에 참여한 여성들과 이전 만성골반통증센터 환자들의 연령비율을 비교해 본 결과 가장 큰 변화를 나타낸 것이 50대 여성으로 9.6%에서 21.3%로 가장 많은 변화를 나타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외국의 경우, 폐경 이후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만성골반통 연구는 거의 시행되고 있지 않다. 이유는 폐경기 이후에는 거의 만성골반통 환자가 발생하지 않고 주로 20대와 30대에서 발병하기 때문이다.

만성골반통증센터 허주엽 교수(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장, 여성의학센터)는 “ 특히 우리나라 폐경기 여성들에게 만성골반통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선진국의 폐경기 여성과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는 결혼하여 남편을 섬겼고 결혼하여 아이 낳고 집 장만하고 아이들 교육 때문에 아파도 참고 살았다. 폐경기 이후에 외국과 달리, 대부분 자녀 결혼에 물심양면으로 혼신의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자녀들을 결혼 시키고 난 폐경 이후에도 제 2의 인생을 대부분 손자나 손녀를 키우고 자녀들을 걱정하고 돌보는데 거의 인생의 대부분을 손자 손녀와 함께 하고 있다” 며 여성들의 폐경기 이후 삶의 변화를 설명했다. 40대 후반에서 50대에 이르면 폐경이 되면서 나타나는 질환이나 신체적 변화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인 동시에 경제적으로 복지 문제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국내 사정을 감안하여 자녀들과의 경제적인 독립생활을 자연스럽게 차근차근히 젊어서부터 준비해야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경제적인 여건과 가족 내의 상황 등으로 연령에 상관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나 노후대비가 쉽지 않은 것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이다.

■ 만성골반통 환자 생활수칙 10계명
1. 골반 내 장기(자궁. 난소 부속기. 방광 등)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한다.
2. 스트레스 상황이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대처한다.
3. 과로 또는 스트레스가 있을 때 골반통이 생기는지 점검한다.
4. 가족.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걱정을 나누며 조언을 구한다.
5. 갱년기 장애로 우울 증상이 있으면 산부인과 진료도 함께 받는다.
6. 규칙적인 생활습관으로 과로를 피하고, 적절한 휴식을 취한다.
7. 담배. 술. 카페인 음료. 약물 남용을 피한다.
8. 정기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
9. 우울증이나 불안감이 발생할 수 있는 생활사건으로 증상이 악화하면 즉시 의사의 조언을 구한다.
10. 여행. 취미 생활. 신앙생활 등을 통해 정서를 순화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한다.

■ 도움말 : 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 여성의학센터 허주엽 병원장

조인스닷컴 이승철(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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