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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선배들 경험담을 들어보니…

중앙일보

입력

여름방학을 맞아 유학생들이 국내로 속속 복귀하고 있다. 그들은 현지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무엇을 배울까. 어려웠던 일, 아쉬웠던 점은 무엇일까. 유학 선배들이 생생한 체험 및 성공 노하우를 털어놓았다.

"나의 성적을 게시판에 공개해 자존심 무척 상해"

필리핀에서 머무른지 7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짜증날 때도, 울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그만큼 추억도 많이 쌓였다. 필리핀에 처음 왔을 때 나의 테스트 성적은 평균 미만이었다. 나보다 두살이나 어린 동생들의 점수가 훨씬 높았다. 매주 강의실 벽에 테스트 성적이 붙고, 매일 단어 성적이 공지돼 모두가 볼 수 있었다. 나는 가끔씩 성적 때문에 꾸중도 듣고 벌도 받았다. 동생들 앞에서 벌을 받는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4학년 동생들은 나를 무시했고 친구 예찬이랑 수시로 비교 당했다.(그때 예찬이와 성적은 최상위였고, 예찬이랑 나는 같은 학년이었다.) 한국에서는 한 학년이라도 높으면 말도 잘 걸지 못하는데, 여기서의 상황은 나로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그룹 2에 속해 있었는데 그룹 3으로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예찬이가 가장 높은 그룹 1, 나는 가장 낮은 그룹 3. 나는 더욱 견딜 수가 없었고 그것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3 개월 후 ICA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예찬이랑 나는 같은 반이었다. 매주 보는 시험에서 예찬이는 대부분 합격했고 나는 떨어졌다. 부끄럽기도 하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예찬이는 따라갈 수 없구나’하는 실망스런 생각도 들었다.‘왜 한국에서 공부를 열심히 안 했을까’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오기도 발동했다. 고진감래라더니 열심히 하는 만큼 성적은 조금씩 향상됐다.

이제 나의 성적은 예찬이랑 비슷하다. 얼마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때까지 최대 목표는 SLEP 테스트 55점이다. 그 목표를 이루면 나는 당당한 모습의 형이 될 것이다.

나를 가장 견디기 힘들게 만든 건 저조한 성적이었다. 게시판에 공개, 다른 사람들과 비교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를 극복한 지금,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자료제공= 글로벌페르마 02-3452-6772

"점심 식사때마다 영국학생 옆에 앉아 먼저 말 걸었죠"

유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영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와 생활방식, 그리고 영국인들의 사고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달리 말하면 영국인 친구들 뿐 아니라 선생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학교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랭귀지코스 없이 바로 IGCSE 1년 코스를 시작했다. 이 때문에 영어를 알아듣는 능력이 다른 유학생들보다 부족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잘못 타서 반나절이나 헤매고 다닌 적도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영국인이었던 정치학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였다. 친구도 없고 영어실력도 부족했던 나는 수업시간 내내 말 한마디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반 친구들은 나의 태도를 자신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난 첫 학기동안 같은 반 친구들과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이 때문에 인종차별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됐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낯선 유학지에선 한국사람만 봐도 반갑고 서로 의지하게 된다. 사람이 그리워 자주 만나게되면 한국어를 사용하게 되므로 영어가 늘지 않는다. 또 말이 안 통하니 영국학생들과 거리를 좁히기도 어렵다. 나는 학교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한국학생보다는 영국학생 옆에 앉아서 먼저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눴다. 숙제시간에 학교 도서관에 가서 모르는 문제를 먼저 물어본다거나 시험준비를 같이 하는 등 작은 실천으로 시작해 영국학생이나 선생님에게 한층 더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가려 노력했다. 한국학생들과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 더 많은 문화와 다양한 국가의 학생들과의 대화에 시간을 투자한다면 효과적인 유학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자료제공= BEC영국교육원 02-6245-0579

"향수병 잊으려고 쇼핑 자주 하고 일을 즐겁게 했었다"

2008년1월 긴장과 슬픔과 설렘이 뒤섞인 마음을 안고서 시애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때만 해도 미국에 대한 환상이 있어 모든게 영화처럼 멋지고 노력하지 않아도 영어가 ‘솰라솰라’ 잘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고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사방에서 영어만 들려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1년을 함께 할 홈스테이 집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며 홈스테이 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틀 뒤, 나랑 같이 살게 될 룸메이트 지연이가 왔다. 구세주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연이와 한참 우리말로 수다를 떨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한달 두달이 지나가고 학교에도 적응돼 갈 무렵 ‘향수병’이 찾아들었다. 한국이 너무 그립고 가족들이 무척 보고 싶었다. 지연이와 함께 쇼핑도 가고 즐거운 일을 하면서 극복하려 애썼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홈스테이 맘에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홈스테이 맘은 내 마음을 이해한다며 다독여주었다. 하지만 부모님을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이겨내야 한다고 격려를 해주었다. 아마도 그런 따뜻한 위로가 없었다면 그때 포기했을지 모른다. 나의 향수병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점차 사라져갔다.

마침내 5월이 되자 학교에서는 Final Test 기간이 다가왔다. 다른 과목은 우리나라와 달리 시험을 치지 않고 발표하는 식의 과제였기 때문에 한결 쉬웠다. 그러나 영어과목이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과제였다. 한국이었다면 1시간 만에 해버렸을 간단한 주제를 놓고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결국 내 수준에 딱 맞는 책을 골라 차근차근 읽어 나가기 시작했고 8장 분량의 과제물을 일주일 만에 완성했다. 자료제공=브래인 파트너스 02-539-2727

프리미엄 라일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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