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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잇단 시행착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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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안보) MB독트린 짠 교수들 대신 직업 외교관에 요직 돌아가

 지난해 한나라당 경선 때 이명박 대통령은 ‘비핵·개방 3000 구상’을 발표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10년 내에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되도록 지원하겠다는 대표적인 대북 공약이었다. 3000달러는 이 대통령이 평소 “국민소득이 남한은 3만 달러, 북한이 3000달러는 돼야 통일의 기반이 마련된다”고 말해온 데 따른 액수다.

당시 이 공약은 남북문제도 경제적 관점에서 풀어냈다는 점에서 ‘경제 대통령=이명박’이라는 이미지를 강화시켜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확고한 비핵화 이후에만 대북 지원에 나선다는 선명한 메시지 때문에 보수층의 지지를 확고하게 하는 구실도 했다.

이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고 이 공약을 만든 이들은 학계에서 소장파에 속하는 젊은 자문교수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남주홍(경기대)·현인택(고려대)·김우상(연세대)·남성욱(고려대)·김태효(성균관대) 교수 등의 역할이 컸다. 이 대통령을 짧아도 4~5년씩 도와온 이들은 한·미 동맹 강화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MB독트린’의 산파이기도 했다. MB독트린은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를 외교에 반영하겠다는 외교·안보 종합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 현재까지 이 대통령 주변에서 MB독트린의 실행에 간여하고 있는 사람은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된 김태효 교수뿐이다. 김우상 교수가 호주 대사로 공직에 들어섰고, 남성욱 교수가 국책 연구기관인 국가전략안보연구소장을 맡긴 했지만 대통령의 ‘곁’에 없어 발언권은 크지 않다. 그나마 김 교수에 대해서도 “아무래도 1급 비서관이다 보니 역할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는 평가가 있다. 특히 이 자문교수 그룹에서 좌장 역할을 했던 남주홍 교수는 통일부 장관 후보에 올랐다가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해 ‘야인(野人)’ 생활을 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까지 지낸 현인택 교수도 조각이나 개각 때 이름이 거론되긴 했지만 번번이 입각에 실패했다.

이처럼 ‘측근 브레인’들이 밀려나면서 현재 외교·안보라인의 수장은 모두 직업 외교관들에게 돌아갔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하중 통일부 장관,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그렇다. 직업 외교관의 요직 기용은 연속성이 보장된 외교를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장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최근 여권 안팎에선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관을 뜯어고쳐야 할 때였던 만큼 이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잘 아는 측근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해야 했다”는 후회 섞인 평가가 나온다.

남궁욱 기자

(경제 분야) MB노믹스 조언 그룹 빠지고 모피아 출신이 당·정·청 장악

 이명박 대통령은 올 초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인사를 지칭하는 말)’에 대한 거부감을 자주 드러냈다. 인수위 시절 “대장성을 없앤 일본에 감탄한다”고 말했다. 정부 개혁을 강조한 발언이지만 당시의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의 전신)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취임 직후엔 기획재정부의 부실한 인력 감축을 질타하며 “사람을 계속 두니까 모피아란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관치 금융을 두곤 “공직자 출신 인재(만) 컸지 민간에서 인재가 클 수 없게끔 이제까지 되어 있었다”고 말한 일도 있다.

MB노믹스(MBnomics, 이 대통령의 경제정책)의 골간도 이런 연장선상이다. 민간의 공간을 키우는 대신 정부의 역할을 축소한다는 게 핵심이다. 공공부문 개혁이 대표적 정책이다. 관료(강만수)·학자(강명헌·백용호·곽승준· 이창용) 출신의 조언 그룹이 MB노믹스를 가다듬었다. 연세대 교수 출신의 윤건영 전 의원도 도왔다.

새 정부 출범 5개월. 상황은 달라졌다. 오히려 “당·정·청을 모피아 출신이 장악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의 경우 이들 관료들이 대다수 포진해 있다. 임태희 정책위의장(행시 24회, 재경부 산업경제과장)-최경환 수석정조위원장(22회, 재정경제원 국고국 서기관) 라인에 재경부 정책홍보관리실장 출신의 유재한 전 주택금융공사 사장(20회)이 정책실장으로 추가됐다.

정부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8회, 재경원 차관)이, 청와대엔 박병원 경제수석(17회, 재경부 차관)이 있다.

이들의 포진을 두고 “실력이 좋아서 발탁된 것”이란 주장이 있다. 또 “경제팀의 호흡을 중시한 라인업”이란 얘기도 많다. 이들은 사실 관료 시절 이리저리 얽힌 경험이 있다. 강만수 장관의 자서전(『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엔 “임태희 사무관이 맡아 수없이 고치고 또 고치는 수고를 했다”는 대목이 있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관료 출신이 개혁보단 안정과 현실을 중시하는 성향이란 점 때문이다. 관 주도형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공공 부문과 규제 개혁이 더뎌질 것이란 예상은 그래서 나온다. 공공 부문 개혁 드라이브를 세게 걸었던 곽승준 전 국정기획 수석이 강만수 장관과 임태희 정책위의장과 갈등을 겪다 물러난 일도 있다.

청와대와 당에선 “경제 쪽 회의를 하다 보면 현실론을 앞세우며 개혁을 뒤로 미뤄야 한다는 발언 일색”이란 불만이 나온다. 당 관계자는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이 대통령이 집권한 핵심 이유인 공공 부문 개혁 같은 정책은 포기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경선캠프 참모였던 한 인사는 “과거 토론했던 걸 이 대통령이 다 잊은 거 같다. 이젠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앙대 장훈 교수는 “취임 후 1년 반 동안 굵직한 개혁 과제를 실행에 옮기는 게 대통령제 정부의 특징”이라며 “그러나 이 대통령의 정책을 잘 아는 핵심그룹이 관료 출신으로 교체되면서 안정적 상황 관리는 가능해졌겠지만 개혁 과제로부터 멀어졌다”고 진단했다.  

고정애 기자

(정치 분야) 원로·이재오계·소장파 그룹 삼각축의 경쟁·협조 무너져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홍준표 원내대표, 임태희 정책위의장’.

이 넷은 이명박 대통령이 근래 가장 자주 접촉하는 정치 조언 그룹이다. 이들 중 박 대표 정도만 지난해 경선 당시 이 대통령을 위해 뛰었다. 홍 원내대표는 경선 후보로 이 대통령과 맞섰고 맹 수석과 임 의장은 중립파 의원 그룹이었다. 반면 경선 당시의 정치 참모 그룹은 3각축이 가동됐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박 대표, 김덕룡 청와대 국민통합특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 원로그룹이 한 축이었다. 그리고 이재오 전 최고위원계와, 정두언 의원·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 등의 소장파가 나머지 두 축이었다. 이들은 경선 룰 공방 때 캠프 내 강온파로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당의 화합을 강조하는 원로 그룹과 수도권 민심을 중시한 소장파, 당내 문제에서 돌파력을 보인 이재오계 등 세 축 간의 경쟁과 협조가 어쨌든 ‘대통령 이명박’을 만들어 냈다.

새 정부 출범 뒤 이 축은 무너졌다는 게 정설이다.

원로 그룹의 위상은 강화됐다.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의원(박희태-홍준표-임태희)들이 당 지도부를 차지했다. 이 의원이 강조하는 화합이 당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반면 이재오 의원은 총선에서 낙선, 미국행을 택했다. 이상득 의원과 두 차례 맞섰던 정두언 의원 등 소장파도 국정운영 세력에서 밀려났다. 일부 기획통 참모(강승규·조해진·권택기·김용태)는 청와대 대신 국회를 택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과거엔 다양한 조언들이 경쟁하는 구조였으나 지금은 사실상 단일 의견 체제”라며 “경선 때보다 정무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 대통령의 선거참모였던 한 인사는 “이 대통령이 싫어하더라도 계속 얘기를 해야 듣는 스타일”이라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경험이 없는 현재의 참모들이 귀에 거슬리는 조언을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경희대 정진영 교수는 “현재 대통령 주변엔 신념이 있거나 현실 감각이 탁월하다기보다 그저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듯하다”며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소수의 핵심 그룹은 유지됐어야 한다”고 말했다.“그래야 일관성 있게 의견을 제시하는 등 대통령의 판단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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