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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盧씨 재판 지상중계-전두환씨 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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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상희 부장검사) -피고인이 80년8월에 이르러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10.26당시 직책이 보안사령관이었던것이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요.』 -그러면 피고인의 인생에 있어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한 것이 그 이후의 인생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각자 그렇게 생각합시다.』 -하나회를 알고 있지요.
『하나회 회장입니다.』 -육사동기생인 박갑룡.남중수등과 함께하나회를 조직했지요.
『그렇습니다.』 -동기간에 위화감 조성의 우려가 있어 회원의신원.모임일시와 장소등에 관해 일절 외부발설을 금했지요.
『그렇지 않습니다.근자에 정치권에서 군부내 비밀조직인양 논란이 있으나 이는 본인과 5공에 대한 정치적 음해입니다.』 -하나회 회원들간의 우의와 신뢰는 거의 혈육지간과 같은 정도로 끈끈한 것이지요.
『정기모임은 아니었고 친분있는 동기끼리 모인 것입니다.육사출신중에서도 이런 친목모임은 많습니다.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으로 8기생중 윤필용과 강창성 선배는 라이벌이었고 둘다 똑똑한후배들을 거느리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윤장군은 전투부대출신으로진급이 빨랐고 강장군은 사관학교.정보부대 근무로 머리는 좋으나진급은 늦었습니다.강장군이 윤장군을 조사했는데 과대포장해서 박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그러나 지만군을 육사에 보내고 나서 박대통령도 과장된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도 강장군 혼자 하나회를떠들고 있을 뿐입니다.』 -73년 4월 소위 「윤필용사건」으로31명의 하나회 회원들이 제거됐는데도 피고인등 90여명은 건재,12.12당시 수도권의 주요부대인 보안사.수경사.특전사.경호실.20사단등에서 핵심보직을 맡고 있었지요.
『하나회 때문이 아니라 상관신임등으로 각자 보직을 받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그때 박준병.최세창이 하나회 회원인줄 몰랐습니다.』 -79년 12월8일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방행위를 금지하는 대통령 긴급조치9호가 해제돼 유신헌법의 폐지가 기정사실화되고 군내부에서도 정승화계엄사령관을 비롯한 군수뇌부가 계엄의 성격과 목적을 사회혼란 수습과 치안을 유지하는데 국 한함으로써 정국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지요.
『본인이 한마디로 답변하기 어렵습니다(변호인 반대신문때 대답하겠다고 회피).』 -이재전차장이 박대통령의 시해사건을 알고도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직무유기혐의로 구속,군검찰부에 송치했는데 정총장이 불기소처분하도록 지시해 매우 불만스럽게 생각했지요. 『이재전소장은 박대통령 시해사건과정에서 혐의가 드러났습니다.김계원 비서실장이 박대통령의 시해사실과 경호실장이 유고라는 사실을 알려줬지만 이차장은 다음날 아침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당직사령과 함께 구속됐습니다.그러나 부하는 놔두고혼자 석방됐기 때문에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79년 10월하순 정총장에게 2억원상당의 수표를 건네주려 했었나요. 『알고 있습니다.』 -정총장에게 『대통령비서실장 금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돈중 6억원은 박대통령 가족들의 생활이 어려울 것같아 근혜에게 주었고 3억원만을 가져왔는데 업무수행상필요해 1억원을 총장께서 허락해 주실 것으로 알고 합수부에서 사용했고 나머지를 가져왔다』고 말한 사실이 있지요.
『있습니다.』 -당시 정총장은 박대통령 유가족에게 이미 준 돈을 고려,2억원을 건네받아 총장비서실장인 최인수준장에게 건네은행에 보관시키라고 지시했으나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피고인등이그 돈마저 써버린 것이 사실이지요.
『그런 일 없습니다.수사관이 김계원 비서실장 방에서 돈을 발견,근혜씨에게 줬는데 근혜씨가 수사하는데 수고가 많다고 3억원을 돌려줬습니다.1억원은 수사비로 썼고 2억원은 정총장에게 줬는데 그 다음은 모르겠습니다.』 -노국방장관에게도 위 돈의 일부인 5천만원을 건네줬지요.
『그런 것같습니다.』 -79년 11월하순경 세차례나 정총장에게 부정축재자 처벌과 재산몰수를 건의했음에도 정총장은 『계엄이치안유지목적의 계엄인데 군이 그런 조치를 취하는 것은 월권이다』고 거부했다는데 사실인가요.
『사실인데 세번 가지는 않았습니다.보안사령관은 계엄사령관은 물론 국방장관.대통령에게도 보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최대통령에게 보고했더니 민심을 수습할 수 있도록 잘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정총장에게 『이런 조치를 하시면 국민들에게 영웅이됩니다』라고 집요하게 건의하고 정총장은 명단이나 한번 만들어보라고 했다는데 사실이지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당시부터 준비했던 부정축재자 명단을 80년 5.17이후에 활용,김종필씨등을 연행.조사했던 것은아닌가요.
『그럴 겁니다.』 -그무렵 세계불교대회 대표로 스리랑카에 출국하려는 이후락 전중앙정보부장에 대해 출국금지했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에 정총장은 재산환수는 곤란하므로 이후락의 출국을 허용하라는 노국방장관의 지시에 따라 피고인에게출국을 허용하라고 지시했지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12월3일 검찰의 조사때는 시인했지않습니까.
『그때는 단식중이어서 피곤하고 해서 검사를 빨리 돌려보내려고그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단식 첫날이었지 않습니까.
『그때 답변은 실수였습니다.이후락은 잘 아는 사이였지만 그때는 부정축재자 명단도 없었습니다.』 -79년12월 초순경 대통령선출을 위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소집시 정총장에게 『합수부에서 잘 지도하겠다.최규하씨가 60~70%밖에 나오지 않으면권위가 서지 않으니 공작을 해야한다』고 말한 사실이 있지요.
『보고한 사실 없습니다.』 -이같은 정총장과의 마찰로 인해 피고인은 정총장에게 거부감을 갖게 되고 정총장은 피고인을 합수부장에서 교체하려고 마음먹었다는데 어떤가요.
『정총장이 마음먹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본인은 정총장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79년 11월중순경 단행된 군인사에서비정규육사 출신들이 군요직에 배치되고 「하나회」소속 장교들이 배제됐지요.
『전혀 그런일이 없었습니다.보안사령관은 인사가 잘못됐다면 인사참모부장이나 국방부 정보부대장을 통해 군의 여론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습니다.』 -특히 피고인은 육사동기생으로 하나회 회원인 최성택장군을 수경사령관으로 추천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총장이장태완장군을 수경사령관으로 임명,불만을 가지게 됐지요.
『그런적 없습니다.』 -79년 12월 초순께 군 일각에 피고인의 잦은 월권행사와 군 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으로 피고인이 곧한직으로 인사조치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정총장이 국방장관 노재현에게 피고인의 인사조치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지요. 『그런 사실 없습니다.』 -79년 12월9일 정총장은 태릉골프장에서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피고인의 경질을 건의했다고 하는데 알고 있나요.
『듣지 못했습니다.』 -피고인등은 인사조치를 차단하고 하나회소속 장교들의 군내 입지를 보전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요.
『전혀 없습니다.보안사령관이라는 직책도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10.26사건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일인 79년 11월6일 이전에 백동림 합수본부 수사 제1국장으로부터 최종 수사결과를 보고받았지요.
『보고받을 이유도 없고 보고받지도 않았습니다.당시 백동림은 마산지구 보안대장이었습니다.』 -백동림은 피고인에게 정승화총장이 김재규와 사전공모하거나 법률상 방조라고 볼만한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고 보고하면서 다만 총장으로서 대통령 시해현장 부근에 있었으므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용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견을 말 했지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피고인은 79년11월6일께 10.26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 기자들의 질문에 정승화 총장은 김재규의 범행에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오히려 사태수습을 잘했다고 답변한 사실이 있지요.
『기억납니다.』 -피고인은 12.12 이전에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정승화총장 연행.조사문제에 대해 보고한 사실이 있나요.
『김계원실장은 청와대의 2인자이고 김재규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실세였습니다.또 정총장은 계엄사령관으로서 실세였습니다.본인은 당시 믿을 수 있는 분은 노장관 한사람 뿐이었다고 생각,당연히 보고했습니다.노장관도 깜짝 놀■면 서 보안을 잘 유지하라고 했습니다.』 -노재현은 피고인으로부터 정승화 총장 연행.조사문제에 대해 전혀 사전보고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고,그가 12.12 당일 합수부측에서 정승화를 연행해갔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계속 피신하는등의 처신을 한 것으로 보더라도 피고인은 노재 현에게 사전보고를 한 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거짓진술을 합니까.
『틀림없이 보고했습니다.』 -피고인은 김재규에 대한 수사가 일단락된 79년11월중순께부터 황영시.노태우.박준병.박희도등 오랜 측근들과 접촉,정총장에 대한 군내 여론을 탐문하면서 정승화 총장의 연행문제를 논의한 결과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바 있지요. 『검찰은 상황을 모르니까 단순하게 질문하지만 그런적 전혀없습니다.여기 함께 재판받는 3성장군 세사람도 모두 그 사람과친합니다.만약 사실이 새나간다면 정총장이 눈치채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89년12월31일 국회에서 『79년11월 중순께 황영시.차규헌.유학성.노태우등과 접촉하면서 정총장 연행문제,군개혁방안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사실이 있다』고 증언한 사실이 있지요.
『당시 증언은 잘못됐습니다.백담사는 겨울철에 걸어서 들어가기도 힘든 곳인데 아들과 비서관들이 자료를 모아 답변서를 만들었는데 점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답변한 것입니다.자료도 부족하고 시간이 촉박해서 한번 읽어보지도 못했습니다.
-79년12월7일께 들이 흥분한 상황이었습니다.황영시가 본인에게 수사를 철저히 하라고 했고 본인은 내사사실을 알려줬습니다.』 -피고인은 79년11월말 김윤호 광주보병학교장으로부터 『군의 상층부를 대폭 퇴진시키고 정규육사 출신들을 훈련시켜 적절히 배치하여야 한다』는 요지의 군 개혁방안을 들은 사실이 있지요. 『만났적은 있지만 인사만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79년12월7일께 보안사령관실에서 노태우를 만나 정총장의 연행.조사문제를 논의한 끝에 연행일을 12월12일로 결정하고 같은 날 저녁 경복궁 수경사 30경비단장실에서 황영시 등 다수의 측근 장성이 모이기로 했지요.
『12월6일 혼자서 정총장 연행을 결심했습니다.그 다음 수사1국장에게 연행계획 수립을 지시했습니다.12월7일 노장군이 외출나와 군에서도 정총장을 수사하지 않아 말이 많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신현확 국무총리 내정에 따른 개각 전날인 12일 정총장의 연행을 전격적으로 단행함으로써 그 결과를 개각에 연결시켜 육군참모총장이 교체되도록 하는 등 군인사에 반영할 의도로 12월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게 된 것이지요.
『개각날짜는 전혀 몰랐습니다.나는 보통 날짜를 잡을 때 외우기 쉽거나 짝수로 되는 날을 택했습니다.12월12일도 그렇고 대통령 취임일을 3월3일로 정한 것도 마찬가집니다.』 -12월7일 피고인의 자택으로 장기오 제5공수여단장을 불러 정총장 연행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12일 18시까지 30경비단장실로 오라고 했지요.
『저녁을 같이 먹었습니다.』 -12월9일 피고인의 자택으로 박준병.최세창을 불러 정총장 조사의 필요성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장성들이 모이기로 했으니 12일18시까지 30경비단으로 오라고 했지요.
『박준병은 아니고 최세창을 불러 정총장에 대한 여론을 물었습니다.』 -12월12일 오전9시30분쯤 보안사령부에서 유학성을만나 정총장 연행계획을 말하면서 18시까지 30경비단장실로 오라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12월11일 15시쯤 참모총장 부관실에서 차규헌을 만났을 때 다음날 19시까지 보안사로 오라고 했지요.
『12일 아닙니까.(김부장검사가 11일이라고 하자)그러면 그렇습니다.』 -정총장 연행을 6일 결심한 뒤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라고 이학봉.허삼수에게 지시했지요.
『그렇습니다.처음에는 이학봉에게만 지시했습니다.』 -이학봉과함께 총리공관으로 정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를 받으러 가면서 허삼수에게 강제로 정총장을 연행하라고 지시했습니까.
『재가여부에 상관없이 19시가 되면 연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 -재가가 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작정이었습니까.
『정총장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의혹이 계속 제기됐기 때문에 재가가 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사 총책임자인 본인이 결심하면 대통령도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확신했습니다.』 -만약 대통령이 서류를 검토하고 재가를 거절해도 자연적으로 작전에 돌입하는 것입니까.
『다시 모셔다 드리더라도 연행하려고 했습니다.』 -재가를 받은 다음 실행에 착수하면 안됩니까.
『안됩니다.재가받은 다음에 어떤 반발이 있을지 모르는데 감히계엄사령관을 연행할 수 있겠습니까.』 -정총장 연행에 대항할 가능성이 있는 장태완.정병주.김진기 등을 12일 오후 연희동으로 유인한 것 아닙니까.
『신촌모임이라고 하는 것은 조홍 대령 진급축하를 위한 파티였지 유인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조홍의 직속상관인 장태완 수경사령관,그리고 같은 병과인 김진기 헌병감,평소 친분있는 정병주특전사령관을 초청한 것입니다.날짜는 본인이 잡았 습니다.』 김상우.정철근.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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