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불길같은 10대의 분노, 적벽을 불바다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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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삼중문(三重門)
한한(韓寒) 지음, 박명애 옮김, 랜덤하우스
632쪽, 13,000원

첫 눈에 반한 ‘퀸카’에게 연애편지를 쓰겠다며 머리를 싸매는 모습이나, 선생님의 말이라면 뭐든 비꼬는 모습이 옆집 중학생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보통내기가 아니다. 고문(古文)을 줄줄 읊어가며 퀸카를 꾀는 모습이 제법이다. 이 ‘맹랑한 녀석’이 사랑에 빠진 순간은 어땠을까.

“가슴이 울렁거리고 숨이 막힐 듯 했다. 두보의 ‘가인’이 가장 먼저 떠올라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 그러고는 곧바로 ‘서상기’에서 장생이 최앵앵을 첫 대면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

어려서부터 중국 고전을 통달한 천재 중학생 린위샹과 문학반의 마더바오 선생으로 대변되는 위선적인 기성 세대, ‘공부는 곧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10대들이 왁자지껄 이야기를 꾸려간다. 문학과 사랑을 소재로 중국의 뒤틀린 교육체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작품은 고문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사건은 없지만 10대 특유의 허영과 낭만을 탁월하게 그려낸다.

“참새가 몸집은 작아도 오장육부를 모두 지니고 있듯이 오늘날의 사랑 역시 명은 짧아도 할 짓은 모두 다 한다. 다른 점은 헤어지고 나서다. 옛날 사람들은 헤어지고 나면 상대방이 마음에 부담을 느낄까 봐 사랑의 새가 날아가버린 뒤에도 절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는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모두들 쉽게 입을 벌려 자신이 먼저 상대방을 차버렸다며 영웅처럼 떠벌린다.”

1982년생인 저자 한한은 화려한 외모에 유명 여배우와의 염문설, 수준급 카레이싱 실력, 고등학교 중퇴 등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다. 한한은 ‘80後작가’로 불리는 중국의 젊은 작가들 중에서도 단연 선두를 달린다. 린위샹은 작가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맹랑한 천재는 페이지를 달려갈수록 사랑과 학업, 가정에서 절망을 맛본다.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분노의 불길은 다시 한 번 적벽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며 분노한다. 그러나 이 분노가 10대의 치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그것이 응당 ‘느껴야만 하는’ 것이며 그가 마주치는 삼중문(三重門)은 중국을 넘어 한국에도 육중하게 서있기 때문이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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