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정치자금 조달 구조-黨職도 거래 명절엔 수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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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는 돈이다.』 야당의 중진 A의원은 이렇게 정의했다.공천에서부터 선거운동,지역구 관리,원내활동 모두 돈으로 이루어진다.이 원리를 빨리 터득하지 못하면 도태된다.겨우 재공천을 받아 당선되더라도 당내 위상을 세우기 어렵다.그 흔한 당직은 커녕 회의 때마다 구석자리를 찾게 된다.
중앙당의 정치자금이 가장 많이 드는 때는 선거.이 비용의 상당부분은 공천헌금으로 충당된다.6대때 첫 등원한 민주당 이중재(李重載)고문도 『그때부터 전국구 공천에 헌금을 받아왔다』면서『이것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도 아는 관행』이라 고 말했다.지도부 인사가 『총재와 담판지으라』고 하면 야당의원들은 으레 돈을 갖다주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나마 사정 바람에 이번 15대 전국구 공천에서 돈 공천은 줄어들었다.국민회의 김상현(金相賢)지도위의장은 경력도 화려한 수백억대 재산의 한 중견 기업인이 헌금 공천을 희망했으나 합법적으로 돈을 받을 길이 없어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그 여파로 이제 지역구도 예외가 아니다.야당의 한 현역의원은골프회원권과 부동산등을 팔아 4억원을 내놓았으나 보기좋게 밀려났다고 주장했다.평소에 갖다준 돈까지 치면 10억원이라고 한다.그러나 경합자가 50억원을 약속하는 바람에 뒤 집혔다고 그는주장했다.
심지어 당지도부 측근들에게까지 헌금을 요구했다고 한 야당인사는 폭로했다.모 야당에서 총재의 친척들 공천문제가 오락가락했던것도 지역구 포기자의 전국구 헌금 액수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3대때 낙천된 야당의 B씨는 『경합자 C씨가 3억원을냈다길래 급히 3억원을 만들어 갖다줘 뒤집었는데,C씨가 다시 2억원을 더 내 떨어졌다』고 주장했다.한 야당 E의원은 집을 담보로 잡히고,형제들의 돈까지 끌어다 10억원을 만들 어 냈다.그 뒤 임기 내내 이자 갚기에 허덕이다 쓰러졌다.
지방선거때도 적게는 1천만원에서 10억원까지 냈고,교육위원 가운데도 1억원까지 낸 사람을 알고 있다고 야당인사 F씨는 전했다. 야당의원은 공천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중앙당 후원회는 물론 총재의 개인사무실 후원회원도 모아주어야 한다.시일내 모으지 못하면 융자를 내서라도 미리 내야한다.야당 G의원은 얼마전후원금 모금을 위해 8천만원을 융자받기도 했다.F의원 은 신용대출 한도가 2천만원이어서 비서이름으로 1천만원을 더 얻기도 했다. 국회직이나 당직도 돈이 걸려 있다.물론 모든 국회직.당직자가 돈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I의원은 국회부의장이 되기 위해 15억원을 냈다는 소문이 있다.중진 J의원은 사무총장 정도면 2억~3억원은 내야 하고,부총재.당3역은 물 론 국장급까지도 돈이 거래된다고 주장했다.
연말연시등 명절이나 보스의 생일 때는 봉투를 들고간다.많게는3천만원,적어도 5백만원 정도는 넣는다고 한다.
가난한 재야출신으로 13대 의원인 H씨는 『나도 1백만원 이상 가는 금부처를 선물했다』고 증언했다.총재가 해외로 나갈 때는 5천~1만달러씩 별도로 여행비를 마련해 주었다고 주장한다.
선거철에만 돈드는 것이 아니다.평소에도 꾸준히 인사를 해야 공천때 그나마 얼굴을 들수 있다.
평소에도 식사비용은 물론 지도부 인사의 집꾸미기에 보약까지 지어보내기도 한다.K의원은 14대 임기동안 이런 비용으로만 4억원이 들었다고 밝혔다.
돈을 관리하는 사람은 보스 측근중의 측근이다.이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돈을 달라고 할 때는 두 사람만 있는 곳에서 얘기한다.녹음이 되는 말보다는 필문필답을 하고 쪽지는 태워버린다. 수표는 받지 않는다.L의원은 2천만원짜리 수표를 갖다줬다가현금으로 바꿔오라는 핀잔을 받기도 했다.
금융실명제 실시로 야당의 자금관리는 더 어려워졌다.과거에는 수표를 몇번씩 가명계좌에 넣었다 뺐다하며 세탁을 했다.
요즘은 아예 다른 사람의 계좌를 이용한다.전국에 불특정 다수의 계좌를 확보하고 분산시킨 뒤 수시로 찾아가는 방식도 쓴다.
이 때문에 모 야당총재가 중앙당에 내놓은 돈이 모두 서로 다른 수표들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모은 돈은 보스의 힘이 된다.이 돈중 많은 부분은 조직관리,다른 후보에 대한 지원은 물론 대선자금등으로 비축되기도한다.그럼으로써 보스의 힘은 더욱 커지고 그 커진 힘 때문에 후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헌금을 낼 수밖에 없는 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김진국.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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