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을/민박] 할머니 방에서 들은 이상한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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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결혼한 지 15년 만인 2006년 12월 31일, 아내와 단둘이 신혼여행 가는 기분으로 새해 해돋이를 보려고 동해로 떠났지요. 숙소를 어디로 할까 고민하다 삼사해상공원 근처로 갔습니다. 그게 고생길의 시작이었습니다. 그곳은 일출 관광객이 너무 많아 방이 동났고 되돌아 온 영덕에서도 간발의 차이로 방을 구할 수가 없었어요.

불안한 생각이 들며 조급해졌습니다. 7번 국도를 따라 삼척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2시간 동안 수없이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같이 “방 없어요”였답니다. 난감하더군요. 지쳐가는 아내가 걱정됐습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또다시 민박이라고 써있는 집을 두드리니 손님으로 와 있는 분들이 “어디 가도 없을 텐데” 하더군요. 차에서 자야 되나 보다 하고 힘없이 나서는데 방문이 빠끔히 열리면서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고개를 내밀더군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방 좀 구해달라고 통사정을 했지요.

사람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는 내가 딱하게 보였던지 몸뻬바지를 입고는 한번 찾아 보자고 앞장을 서서 가는 거예요. 고마운 아주머니는 몇 집을 돌며 우리를 대신해 사정 했지만 역시나 빈방은 없었습니다. 아주머니가 최후의 결단을 내린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편하겠지만 아는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 방이라도 괜찮겠어요?”

어쩌겠습니까. 아주머니를 졸래졸래 따라갈 수밖에요. 찬바람을 막으려고 그랬는지 담요를 쳐놓은 할머니의 방문을 낮은 포복으로 들어갔습니다. 아! 메주 띄우는 냄새와 할머니 냄새가 짬뽕된 방안의 ‘향기’는 참 묘했습니다. 그래도 방바닥이 뜨근뜨근해 좋았습니다. 가는 귀를 먹은 아흔을 바라보시는 할머니와 소리를 질러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막 잠이 들려는 때였습니다.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떴지요. 그런데 허걱, 할머니가 머리맡의 요강에 앉아 볼일을 보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내도 저도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지요. 새벽에 집을 나오며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는데 자꾸 웃음이 나오더군요. 할머니는 우리가 왜 웃나 하셨겠지요. 그날 일출은 감동이었습니다.

박상호(회사원·46·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귀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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