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사회봉사 명령제'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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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전 중학 국어담당 여교사와 학교폭력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학교폭력이 사실 심각해요.중학생들이 한동네에서 고등학교 선배들과 폭력서클로 연결돼 있어요.정부에서 발표한 불량학생 「사회봉사명령제」도 취지는 이해할 수 있어요.그러나 결국 선생님들에게 문제학생 선도를 포기하고 경찰에 넘기라는 얘 기 아닌가요.부모가 포기하고 선생,특히 담임선생까지 포기한 학생을 사회가 선도할 수 있나요.』 여교사 얘기의 초점은 학생은 어디까지나 학교가 최종 선도기관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아무리 집을 싫어하는 문제아이라도 학교는 와요.』 학교선생님까지 포기해버린학생은 결코 구할 수 없다는 말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최근 정부의 불량학생 「사회봉사명령제」가 발표되자 교육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학교들은 문제학생이발생하면 시끄러움을 피해 정학이나 퇴학을 일삼는 사례가 많은데「사회봉사명령제」는 학교보고 그 이상의 비교육 적 행위를 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교사들로 하여금 문제학생을 사법당국에 「고발」까지 하라는 것이다.
그 여교사는 「사회봉사명령제」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큰 의문을표시했다.경찰에 이첩된 불량학생이 「사회봉사」를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혹 한 둘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과연 얼마나 달라질까 의문을 품는 것이었다.
사실 범법자들에게 사회봉사를 시킬 수는 있다.그러나 그 명령은 「처벌」보다 관대하게 느껴질 때 효과가 있다.현재 퇴소를 앞둔 소년원생들이 사회봉사를 하는 것과 같이 또는 경범죄 저촉자가 사회봉사를 명령받는 것과 같이 사회봉사가 수 형이나 벌금형보다 관대하게 느껴질 때 사회봉사명령은 선도의 효과를 기대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 범법사항이 없는데 사법당국이 개입하고,더구나 그 신병 인도작업을 선생님과 학교가 한다고 했을때 소위 「문제학생」이 느끼는 감정이 어떨까.강제로 학교밖으로 이끌려 「사회봉사」에 나서게 될 때 그 어린 청소년은 봉사현 장에 닿기도 전에 학교와 사회에 차디찬 눈길부터 보내게 될 것이다.「사회봉사」가 관대한 조치이긴 커녕 억울한 「처벌」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문제는 학교안에서 해결해야 한다.연초 국민복지기획단이 제시한 21세기 국민복지 청사진에도 비행 청소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과 같은 「학교사회사업가(school social worker)」의 도입을 건의했었다.
「사회봉사 명령」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의 축도 좀 바꿔보면 어떨까.즉 문제학생들을 뽑아 강제로 사회봉사를 시키기보다 소위「정상학생」들이 자원봉사에 많이 나서게 하는 쪽으로 말이다.그자원봉사에 선배들을 투입하는 것이다.폭력학생들 이 선후배 서클로 조직화돼 있는 것과 같이 「정상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선후배가 조직되는 것이다.
고등학생.대학생들이 중학교.초등학교에 가 자원봉사 프로그램을진행하는 것이다.미국 등 선진국 자원봉사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학교 개인교습 등이 바로 이것이다.미국 하버드대생들이보스턴 미션 힐 빈민가의 중.고교 교실에 가 흑인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IBM사 사원들이 미 전역의 학교.지역사회 기관에서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컴퓨터교육을 시키는 것 등이 그런 것들이다.
어둠은 「어둠」이 아니라 「밝음」으로 걷어내야 한다.사회봉사처벌이 아니라 선배와 학부모가 클라스에서 어린 학생들과 함께 자원봉사에 나서는 것,그리하여 밝은 「자원봉사의 끈」으로 묶어학교폭력에서 그들을 보호하는 것,그 선후배 자 원봉사 프로그램을 우리 사회와 학교가 많이 개발해내야 한다.
이 점에서 최근 중앙일보가 펼치는 「학교정보화(IIE)」 범국민 자원봉사운동에 대학생.직장인들의 많은 호응과 동참도 기대해 본다.
李昶浩 자원봉사사무국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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