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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6070 이럴 때 서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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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아버지 요즘 어떠세요. 어머니 안 계신가 보죠."

"뭔 모임 있다고 나갔다."

"아버지는 뭐 하세요."

"아, 청소하지 뭐해."

회사원 K씨(36)가 따로 계신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걸면 가끔 이런 대화가 오간다고 한다. 63세 부친이 나가는 정기 모임은 동창회 등 3~4개. 이에 비해 모친(61)은 동창회에 봉사활동 모임까지 6~7개여서 거의 매일 바깥 나들이를 한다. 이 때문에 전에는 손에 물 한번 묻히지 않았던 부친이 얼마 전부터 집안일을 하게 됐다.

이 같은 '인생역전'은 K씨 부모님만의 일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할머니들의 사회 활동이 활발하다. week&이 60세 이상 어르신 114명을 대상으로 생활과 사회의식에 대해 조사한 결과다. 응답자는 수도권 거주자 74명과 다음 카페 '아름다운 60대'(cafe.daum.net/sixty) 회원 40명이다.

할머니 가운데 정기적인 모임이 없는 분은 응답자 중 단 한명(2.8%). 이에 비해 할아버지는 19.2%가 모임이 없었다. 3개 이상 모임에 나가는, 바깥 활동이 활발한 분들도 할머니(77.7%)들이 할아버지(47.5%)보다 많았다. 인터넷 사용에서도 할머니들이 앞섰다. 반면 세상에 대한 관심은 할아버지들이 높아 신문.TV를 더 많이 봤다.

푸대접이 서러워="돈 잘 버는 40대가 젤루 대접받지." "10대여, 10대. 요즘 수능 방송이 어떻고, 온통 걔네들 위한 소리뿐이잖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대접받는 세대'에 대한 반응들이다. 응답은 40대-30대-10대의 순. "청년 실업 문제로 마음 고생이 심할 것"이라며 20대에겐 가장 낮은 점수를 주었다. '60대 이상인 우리들이 제일 대접을 받는다'는 8%뿐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60대 이상은 지금도 우리 사회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넷 중 셋(75%)이었다.

푸대접에 대한 서러움이 그만큼 컸을까. 종묘공원에서 만난 74세의 노신사는 이렇게 일갈했다.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고, 경제 발전을 위해 혼신을 다한 우리들이다. 60대 이상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었겠나. 그런데 지금은 나와도 구박, 들어가도 구박. 도대체 어찌 된 세상인가."

몰라도 된다고?=젊은이들로부터 가장 듣기 싫은 소리는 "모르셔도 돼요"(47%). 신문과 TV 뉴스를 보며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를 매일 챙기는 분들이 상당수(73%)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모르셔도…"란 그같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니까. 특히 할아버지 열에 아홉(89%)은 신문과 뉴스에 관심을 기울였다.

참견 말라는 투의 "가만히 계세요"(25%)도 어르신들 심기를 불편케 하는 언사로 꼽혔다.

어르신들이 지적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심각한 문제(복수응답)로는 '정치혼란(56%)'과 '실업문제(54%)'가 막상막하였다.

그러나 week&팀이 직접 설문 응답을 받으러 다니며 가슴에 꽂힌 응답(5건.4%)은 이것이었다.

"기자 양반, 심각한 문제라고 늘어 놓은 보기에 왜 '노인 홀대'가 없나. 그게 얼마나 큰 문젠데."

환갑이면 아직은 한창="60이면 한창이지. 그런데 도무지 일 할 기회를 안 주잖어."(김승련 할아버지.75)

어르신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60세면 젊다'(88%)고 했다. 특히 할아버지들은 96%가 '그렇다'였다. 반면 할머니들은 '젊지 않다'도 30%였다.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는 "여성은 50세 전후에 폐경기를 맞으면 '할머니가 됐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이런 경향이 설문 조사에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젊은 60세'라 여겨서일까.'지하철 경로석에 스스럼 없이 앉을 수 있는 나이'가 '60세'라는 답(18%)은 다섯에 한명이 안 됐다. 그러나 '60이면 젊다'면서 동시에 '그래도 60세면 경로석에 앉을 자격은 있다'고 답한 경우도 12건(11%) 이었다.

어르신 절반은 예비 네티즌=인터넷 이용은 여덟분 중 한분꼴(13.5%). 전원이 인터넷 사용자인 다음 카페 회원들을 제외한 수치다. 할머니들의 이용률(25%)이 할아버지(9%)들의 두배 반이었다.

인터넷을 배운 동기는 '손자와 e-메일 주고받으려고''시간 때우려 노인복지관에 나갔다가 배우게 됐다' 등 다양했다. 다음 카페 '아름다운 60대'의 운영자인 김경자(61)할머니는 "자존심 때문에 컴퓨터를 배웠다"고 말한다. "청소할 때면 애들이'컴퓨터는 건드리지 말라'는 데 얄밉더라고. 그래서 컴퓨터 학원에서 인터넷을 배웠어. 이제는 애들이 인터넷 하다 막히는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요."

인터넷 비사용자의 절반(54%)은 "앞으로 배워야겠다"고 했다. 무료 교육을 원하면 가까운 노인복지관이나 한국정보문화진흥원(02-3660-2562)에 문의하면 된다. 휴대전화는 남녀 모두 80% 정도가 갖고 있었다.

권혁주.이경희.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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