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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종수 시시각각

내 탓, 네 탓, 남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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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무언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잘못됐을 때 남의 탓을 하는 것은 어쩌면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어떻게 모든 일에 ‘내 탓이오’로 일관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분명하면 탓하기도 쉽다.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거나 불가항력적인 사고의 경우엔 하늘을 탓하기도 한다. 남의 탓은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다. 막상 ‘내 탓이오’ 하고 나섰을 때 뒷감당을 하기 어렵거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 뻔하다면 슬쩍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충동이 일기 시작한다. 비난의 화살을 피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방어책인 셈이다.

그러나 분명히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습관적으로 남을 탓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단순히 자신의 심리적 평안을 위한 둘러대기가 아니라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심각한 성격장애가 의심되기 때문이다.

전임 노무현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집권 내내 ‘남의 탓’으로 일관했다. 집권 초반 경기 부진과 카드대란은 김대중 정부 탓이었고, 개혁이 부진한 것은 보수언론과 수구세력 탓이었다. 북핵 문제가 풀리지 않은 것은 미국 정부 탓이었고, 부동산 대책이 실패한 것은 건설업체와 중개업자, 금융회사, 보수언론 등 부동산 투기세력 탓이었다. 이렇듯 매사에 일이 꼬이기만 하면 남의 탓을 해댔다. 잘해 보려는 의도의 진정성과 잘할 수 있는 능력의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반대세력이 발목을 잡는 바람에 일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잘못된 일에 나는 책임이 없고 온통 남들 탓뿐이다. 그러니 반성은 없고 노여움만 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남들과 대적해 비난하느라 세월을 다 보내고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임기를 마쳤다.

그 ‘남의 탓’ 타령이 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으니 딱하기 짝이 없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는 전임 정권 때 다 약속한 것인데 약속을 지키지 않은 탓에 그 책임을 새 정부가 다 뒤집어썼다고 주장한다. 경제가 부진한 것은 예상치 않은 국제유가의 급등과 세계경제의 침체 탓이지 정책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수도권 규제완화와 지방발전 계획이 꼬인 것은 다 전임 정권이 대못질한 탓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한심한 야당 탓이다. 공기업 개혁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것은 전투적인 공기업 노조 탓이요, 금강산에서 관광객이 총 맞아 죽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것은 뻔뻔스러운 북한과 무책임한 현대아산 탓이다.

쇠고기 촛불집회 이후 그나마 ‘내 탓’이라며 단행한 인적 쇄신은 시늉뿐이었으니 진정 ‘내 탓’이라고 여긴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진심으로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반성도 없고 개선도 어렵다. 그저 순간의 비난과 모멸감을 모면할 수 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찾을 수 없다.

이 와중에 청와대는 무너진 대통령의 이미지를 되살리는 대대적인 홍보전을 벌이겠다고 한다. ‘서민 대통령,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다시금 부각시키는 대통령 이미지 통합작업(PI·Presidential Identity)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때 재미를 본 서민·경제 대통령의 이미지가 집권 초반 인사 파동과 쇠고기 파동 같은 외부 변수로 인해 훼손되었으니 이를 복구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내 탓’이라는 반성이나 책임의식은 없다. 대통령은 본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외부 요인’ 탓에 이미지를 구겼다는 왜곡된 인식뿐이다. 진정으로 서민·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는 각오는 없고 그런 이미지를 만들면 된다는 얄팍한 계산만 보인다.

사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감수하기에는 억울한 면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의 탓’만 한다고 해서, 포장만 고친다고 해서 꼬이고 헝클어진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숨거나 피한다고 그 문제가 없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책임을 모면할 길도 없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