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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for Money] 전문가가 점쟁이보다 못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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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점쟁이를 족집게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점쟁이가 하는 말 가운데서도 자신이 듣기를 원하는 말만 듣는다. 틀린 예측은 아예 한 귀로 흘려듣고 만다. 점 집이 너무 많아져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점쟁이가 한 예측이 틀릴 경우 복채의 3배를 벌금으로 물리면 된다. 점 보러 간 사람들은 허투루 듣는 법이 없고, 예측이 틀렸다는 신고도 속출할 것이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벌금을 내야 하는 점쟁이와 처지가 비슷하다. 이들의 예측에 따라 투자했다 손해를 본 사람들이 이들을 크게 원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판이 결정적으로 나빠진다는 점에서 일종의 벌금을 내는 셈이다. 당연히 보통의 점쟁이보다 더 신중하게 전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주식과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의 전망은 점보다 나은가?

누구도 그렇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주식시장에서는 코스피지수 3000시대를 호언장담했던 한 유명 애널리스트의 추락이 화젯거리다.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올해 초 대부분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새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면 부동산 가격이 오를 일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자산 시장의 전문가들은 왜 이렇게 이름에 걸맞지 않게 틀린 전망을 내놓는 것일까? 우선 이들은 부정적인 전망에 약하다. 증시에는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신은 나쁜 일을 당하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 고대 선전포고를 하러 갔던 사신들이 참수형을 당했던 것처럼,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가는 소속 회사나 증권업계, 심지어 정부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전문가들의 치명적 약점은 사고의 관성이다. 이들은 일단 오르면 오른다는 쪽에, 내리면 내린다는 쪽에 건다. 시장의 추세가 크게 변할 때는 결정적 취약점을 드러낸다. 전망이 일상적인 업무가 되면 숲 전체보다는 나무에 집착하게 마련이다.

미국의 전설적 애널리스트 가운데 로버트 파렐(76)이란 사람이 있다. 메릴린치사에서의 애널리스트 경력 17년 가운데 무려 16년 동안 미국의 ‘기관투자가’라는 잡지에서 최우수 애널리스트로 뽑혔을 정도다. 특히 그는 1980년대와 90년대 거품이 빠질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와는 정반대 전망을 내놓아 화제가 됐다. 이런 전망은 결과적으로 블랙먼데이와 정보기술(IT) 거품 붕괴로 현실화됐다. 고객 사이에서 인기를 바탕으로, 그는 60세가 되던 1992년 공식 은퇴 뒤에도 같은 회사의 자문역을 수행해왔다.

그가 진정 고객을 위한 전망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1950년대 후반 메릴린치에 입사해,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애널리스트가 됐다. 그 후 시장을 앞서는 분석 방법을 개발하는 데 앞장섰다. 이런 방식에 대해 파렐은 ‘단서 메모(Tip and Clip)’ 방식이라고 불렀다. 이에 맞서 그는 오늘날에도 광범위하게 쓰이는 기술적 분석 기법을 만들어 냈다. 그는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종목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걸 팔 준비가 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기 때문이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가 걸린 전망을 내놓을 때, 투자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말이기도 하다.

김방희 KBS 1라디오‘시사플러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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