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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눈먼 선택' 이젠 그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이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던 날 국민들은「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라며 분노했다.치욕마저 느껴야 했다.
겉으로는 「깨끗한 정치구현」을 역설하면서 「부도덕한 통치」로검은 돈을 챙겼던 두 얼굴의 인물을 국가원수로 받들어 왔으니 그도 그럴 수밖엔….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자.
87년 대선당시 그가 전국 곳곳의 유세장에서 허위의 탈을 쓰고 「믿음의 사회건설」을 약속할때 나는 그 자리에서 『위대한 보통사람』을 연호하며 열광하지 않았던가를….
어쨌든 그는 「3金씨」와의 각축끝에 유권자 36.6%의 지지로 대권을 차지했었다.민주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면 그에게 절대권력을 준 것은 그를 지지한 유권자들이었다.
물론 정치자금이란 미명아래 거둬들인 검은 돈으로 2천억원대의부를 축적한 盧씨의 파렴치한 행위는 단죄받아 마땅하다.그렇지만그에게 돌을 던지기에 앞서 우리의 눈멀었던 선택도 부끄러워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15대 총선거일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본사 조사결과 이번 총선에 출전하겠다는 선량지망자는 모두 1천3백50여명,경쟁률은5.3대1로 29년만에 최고를 기록하리란 전망이다.
이번 선거의 두드러진 현상은 노태우.전두환(全斗煥)씨 비자금파동 등으로 정치권에 회오리가 몰아치면서 여야의 구분이 없어져가고 있다는 점이다.이에따라 「정치신인=야당」이란 등식도 깨지고 있다.과거 학생운동 등에 앞장섰던 급진.개혁성 향의 신인들이 여당의 대열에 가세하는 「경력파괴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정당은 어떤가.
정치권의 지각변동으로 「헤쳐 모여」를 거듭하면서 개인의 신조.사람됨됨이 등은 제쳐놓고 당리당략에 따라 후보를 고르거나 버리고 있다.「개혁의지」「신선도」「도덕성」「당선가능성」등을 우선으로 물갈이를 했다고 큰소리치지만 공천원칙이 불분명하다.개혁의지가 강한 인물인지,충성도가 강한 인물인지 아리송할 뿐이다.정치권의 사분오열로 여야를 기웃거리는 철새정치인들도 부쩍 늘었다.이들은 소박한 정치철학이나 신조도 없이 변절과 배신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다.그 런데도 후보들은 「K고가 배출한 최고의 수재」「부정을 모르는 미스터 클린」 「정치의 꿈나무」 등 각양각색의 탈을 쓰고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한표를 호소하고 있다.그래서 옥석을 가리기가 어렵다.그렇지만 이번만큼은 한번 옥석을 가 려보자.달콤한 공약이나 돈봉투에 현혹되지 말고 철저한 검증과 비판적인 안목으로 참일꾼을 선택해보자.
최소한 돈으로 표를 사려는 후보는 냉정하게 버리자.체육관에서돈 안쓰고 당선된 전두환씨도 재임중 수천억원을 챙겼는데 돈으로금배지를 샀다면 본전생각 때문에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을테니까. 이당 저당을 기웃거리는 철새정치인에게도 본때를 보여주자.그들은 금배지를 달고 나면 실리를 저울질하며 선거구 주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당적을 옮길테니까.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은 고(故)미테랑 전대통령의 추도식에서『미테랑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걸작품」이었다』고 회고했다.어쩌면 미테랑은 성숙한 프랑스 정치문화가 만들어낸 정치인으로서의걸작품인지 모른다.
「후보가 돈요구를 거절하자 운동원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는 본지의 보도(3월4일자 4면)는 아직도 우리 선거문화가 병들어있음을 말해주고 있다.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문화가 타락할 때,그래서 부끄러운 선택이 되풀이될 때 성숙한 정치문화 는 기대하기어렵다.더이상 부끄러운 선택을 되풀이하지 말자.죽어서도 국민의가슴속에 영원히 사는 정치지도자로서의 「걸작품」을 만들어보자.
빈손으로 돌아가 고향에 뼈를 묻을줄 아는 정치의 거목을 키워보자.
김창욱 수도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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