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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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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건 누구의 작품,이건 또 누구의 것…하며 이자벨은 춘화의 작자를 하나하나 짚어나갔다.17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이름을떨친 일본 화가들이라 했다.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마),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스즈키 하루노부(鈐木春 信),히시카와모로노부(菱川師宣)….
여남은명의 한자 이름과 영문표기 패가 목판화의 복제그림 아래붙어 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화가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춘화를 그렸단 말인가? 그 시대의 일본 풍조를 알 수 있을 것같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에 출병을 단행한 것은 1592년(선조 25년)의 일이다.임진왜란이 터진 것이다.처참한침략전이 한창이던 1598년 히데요시가 병사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등 중신들은 그의 죽음을 숨긴채 일본군의 철수를명령한다.곧 이어 이에야스가 정권을 장악하여 도쿠가와 막부(幕府)시대를 연다.1603년이다.이듬해 조선 조정은 1천3백90명의 포로를 돌려받고 이에야스의 화평 제의에 응한다.1607년여우길(呂祐吉)을 정사(正使)로 한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가 이에야스를 만남으로써 조선과 일본의 국교는 비로소 복구된다.
오랜 전국시대(戰國時代)가 끝나고 막부의 본거지 에도(江戶.
지금의 東京)는 상업도시로 흥성거렸다.신흥의 장사꾼이 활개쳤고서민들도 자유스런 개인생활을 누리기 시작했다.
서민의 모습을 화려한 필치로 그려낸 「우키요에」는 이런 시절에 등장했다.
동주재 사락(東洲齋 寫樂)의 일본 발음은 「도슈사이 샤라쿠」다. 『하지만 샤라쿠만이 춘화를 그리지 않았어요.이름있는 화가라면 너도나도 춘화를 그린 시절에 샤라쿠는 왜 성애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요? 그의 작품생활은 너무나 짧았어요.1794년 5월에서 1795년 1월까지 단 아홉달.성애도까지 그 리기엔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기생.배우.씨름꾼들의 수많은 걸작 그림을 그린 사람이 그리려고만 했으면 당시의 화가들이 즐겨 그린 춘화를 단 몇장이라도 그리지 않았을리 없어요.샤라쿠는 일부러 안 그린 것이 틀림없어요.왜 그랬을까요?』 코냑잔을 손아귀에 쥔 채 열변을 토하던 이자벨은 자문자답했다.
『…나도 모르겠어요.』 그 말에 모두 웃었다.아리영을 쉬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미스터 그린의 제의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디언 핑크빛 커튼이 쳐진 침실로 안내받았다.손님용의 방이라 했다.짐을 대충 챙기고 잠옷으로 갈아입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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