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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안 좋은 단임제 … 세종대왕이 해도 쉽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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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근래 다시 “개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통령 4년 중임제다” “의원내각제다” “영토조항도 손봐야 한다”며 개헌 논의가 분출하고 있다. 왜 이 시점에 개헌론이 터져 나올까. 전문가들은 “필연”이라고 말한다.

①“단임제 폐해를 봤다”=현행 헌법은 대통령 5년 단임제다. 이명박 대통령 이전에 네 명의 전임 대통령이 있었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특히 임기 말 평가가 좋지 않다. 정치권에선 “세종대왕이 해도 쉽지 않을 것”이란 자조가 나올 정도다.

서울대 정종섭(법학) 교수는 “승자독식 구조여서 갈등이 양산되는 상황”이라며 “대통령이 독주하는 방식이다 보니 개인 성격마다 국가 운영이 달라져 안정적이지 않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박찬욱(정치학) 교수도 “대통령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②“시대 변화 수용해야”=한국헌법학회장인 경북대 신평(법학) 교수는 “21년간 누적된 국내외적 변화는 현행 헌법을 합리적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세계화와 민주화, 그리고 남북 간 긴장 완화로 대표되는 세 가지 현상이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고 했다. 신 교수는 “87년 헌법을 개정할 때만 해도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라고 설명했다.

경희대 김민전(정치학) 교수는 “87년엔 대통령 단임제와 직선제만 규정했을 뿐 나머지에 대해선 큰 고민을 안 했다”며 “이전 시대의 권위주의적 요소가 남아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정보기술(IT)의 발달이 개헌을 압박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동대 이국운(법학과) 교수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같다’(헌법 제82조)는 조항을 예로 들며 “87년 당시 인터넷이나 전자결재에 대해 알았겠느냐”고 했다.

③“21세기 비전 담아야”=‘지구 온난화와 우리의 미래’ 집행위원장인 이부영 전 의원은 “전 지구적 시각을 갖지 않고는 세계시민, 세계국가 대열에 낄 수 없고 우리 물건도 팔 수도 없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라면 다 그럴 것”이라며 “헌법에도 이런 내용이 담겨야 할 때가 됐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세계화로 인해 다민족·다문화 국가로 바뀔 때에 대비해 ‘국민’이란 용어를 ‘인간’ 또는 ‘시민’으로 바꾸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최근 촛불집회에서 드러났듯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민의(民意) 형성 과정을 정부와 정치권이 어떻게 수용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마디로 “헌법에 21세기의 비전을 담자”(동국대 철학과 홍윤기 교수)는 주장이다.

④“20년 만에 오는 기회”=18대 국회 임기 중엔 대통령 선거가 없다. 유력 대선 주자에 의해 개헌 논의가 무산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2007년 초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을 때 차기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개헌론을 일축한 일이 있다.

그래서 2010년 지방선거 이전을 개헌의 적기라고 주장하는 학계 전문가가 많다. 숭실대 강경근(법학) 교수는 “이른 시일 내에, 2년 안에 하지 않으면 개헌하기가 쉽지 않다”며 “후반기 국회에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해다. 20년 만이다. 대통령제로든 의원내각제로든 권력구조를 개편하더라도 현재의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임기를 크게 ‘손해’보는 일이 없다.

⑤“정당들 간의 약속”=2007년 노 전 대통령은 석 달여간 “연임제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과 한나라당 등 6개 정당 원내대표들이 “18대 국회에서 개헌 논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다음 대통령의 임기 중 개헌을 완료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당론을 정했다. 정치권에서 “18대 국회에서 개헌한다는 건 이미 17대 국회에서 합의를 본 내용”(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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