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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 대책 없는 美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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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미 군정이 새로 창설한 이라크군이 과격 시아파의 반란을 진압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전후 미군이 양성한 이라크군 4개 대대 중 제2대대는 지난 5일 시작된 미 해병대의 팔루자 포위공격을 지원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결국 미군 당국은 이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추가로 미군을 이 지역에 급히 보냈다.

전후 치안담당을 위해 창설된 민병대.경찰.시설보안군 등 치안유지 병력도 이번 시아파 '봉기' 진압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시아파 지역에 배치된 이들 중 20~25% 정도가 근무지를 이탈하거나 저항세력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예견된 일이었다. 미 군정은 '대책없이' 지난해 5월 이라크 군경을 해산했다. 전쟁 직후독재 바트당 주도의 군대를 해산하고 '새롭고 미국의 정책에 부합하는' 군경을 양성키로 했다.

그러나 미 군정의 오판은 수개월 만에 확인됐다. 해산된 이라크 군경은 지속적으로 반점령 시위를 주도했고 무장단체에 가입했다. 지난해 8월 대규모 테러가 발생하자 미 군정은 이라크 군경을 서둘러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경찰은 한달, 정규군은 9주 교육만 받고 실전에 배치됐다. 산발적인 저항만 지속된 지난달까지는 나름대로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달 들어 대규모 봉기와 전투가 발생하자 이라크 군경은 와해됐다. 월급 60달러를 받고 자국민들에게 총을 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휘체계도 문제다. 이라크 국방장관은 지난달에야 미 군정에 의해 임명됐다. 하지만 미 군정은 국방부와 내무부의 자금을 관리하고 있어 이라크 군경은 모두 미군의 지휘를 받는 셈이다.

미군 당국은 올해 말까지 치안병력 16만, 군병력 4만명 등을 재건해 치안을 이라크인들에게 넘길 것이라는 계획을 급히 수정하고 있다. 1만명 규모의 추가파병을 국방부에 요청한 것이다. 전직 이라크군 장교를 복직시켜 군 지휘를 맡기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러나 주권 이양을 80여일 남긴 현상황에서 이라크 군경의 '안보 및 치안 기능'이 얼마나 회복될지는 미지수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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