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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 키워드 뉴스] 오레오(Oreo) ‘외모는 흑인인데 의식구조는 백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미국의 한 TV 시사프로 진행자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를 ‘오레오(Oreo)’ 쿠키로 비유,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에도 수입되는 오레오는 겉은 검은색 과자지만 속은 흰색 크림으로 채워져 있다. 때문에 미국에선 피부는 검으면서도 의식 구조는 백인 같은 흑인을 비꼴 때 오레오란 표현을 쓴다. 미국식 사고에 젖은 동양인을 ‘바나나’라고 낮춰 부르는 것과 같은 식이다.

오바마를 이런 비속어로 비유한 장본인은 존 맥러프린이란 TV 토크쇼 사회자. 그는 최근 미 전역에 방영된 자신의 토크쇼에서 “오레오라는 표현에 딱 맞는 오바마 같은 인간이 일평생 흑인운동에 몸바쳐온 제시 잭슨 목사에게 도움이 되겠느냐”고 출연자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질문을 받은 출연자는 “오바마를 오레오로 비유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그를 그렇게 본다면 미국의 모든 흑인이 오레오”라고 응수했다.

오바마 지지자들은 “오바마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라고 크게 반발했지만 오바마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바마가 오레오 소리를 듣게 된 건 흑인사회를 따끔하게 질책해 온 그의 언행 때문이다. 백인이 인종적인 반감을 우려해 쉽게 다루지 못한 흑인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지적한 것이다. 지난달 아버지의 날(6월 15일)에는 시카고의 한 교회에서 “많은 흑인 아버지가 가정에서 실종됐거나 부재 중이다. 흑인 아버지들은 소년처럼 행동하면서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14일 신시내티에서 열린 전국 유색인 지위향상협회(NAACP) 총회에서도 흑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우리(흑인)는 워싱턴(정계)과 월스트리트(재계)에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해야 하지만, 우린 자신들에게도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흑인)가 꿈을 되찾고자 한다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아이들을 지도하고, TV를 끄며, 비디오 게임을 치워버리고, 학부모와 교사의 대화에 참석하며, 아이들의 숙제를 돕는 등의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또 “자식을 낳는 것만으로 부모의 책임이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자식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아이를 가지는 능력이 아니고, 그들을 잘 키울 수 있는 용기”라고 강조했다.

오바마가 흑인 부모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건 1992년 빌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가 구사했던 선거전략을 연상시킨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클린턴은 당시 흑인이 주류인 힙합(80년대부터 흑인층에서 유행한 빠른 리듬의 음악과 춤) 예술가들에 대해 “백인을 적대시하는 폭력문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때 클린턴은 잭슨 목사 등 일부 흑인 지도자의 비판을 받았지만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AP통신은 설명했다.

워싱턴·뉴욕=이상일·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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