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유가 잡자” 미국 연안 석유 시추 금지 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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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981년부터 27년간 계속돼온 미국 연안에서의 석유·천연가스 시추 금지 조치를 14일 해제했다.

부시 대통령은 시추 금지 해제 명령문에 서명한 뒤 기자들에게 “지금이 (유가 억제를 위해) 행동할 때”라며 “나는 할 일을 다했고 공은 의회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치솟는 유가를 의식한 부시 행정부의 상징적 조치로 평가된다. 텍사스산 원유 선물가격은 이날 배럴당 145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내 휘발유 소매가격은 갤런(3.8L)당 4달러를 넘어선 지 오래다. 미 에너지부는 “이번 조치로 연안 대륙붕 지역을 시추할 길이 열리면 석유 180억 배럴과 2조1520억㎥의 천연가스를 캐낼 수 있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환경보호를 이유로 연안시추 규제를 주장해온 민주당은 반발했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대변인 빌 버튼은 “부시 행정부의 실패한 에너지 정책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도 “기만적 조치”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연안시추에 반대했다가 입장을 바꾼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는 “이번 조치는 (석유가격 진정을 위한) 중요한 신호”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어 이번 조치가 의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설혹 의회를 통과해도 연안을 관할하는 주들이 금지 해제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가 남아있는데, 주지사마다 입장이 다른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공화당원인 찰리 크리스트 플로리다 주지사는 대표적인 연안 시추 찬성론자다. 반면 같은 공화당원인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미 에너지부는 연안 시추가 전면 허용돼도 2030년 이전에는 미국 내 석유 수급에 별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이번 조치는 고유가에 허덕이는 미국민들을 달래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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