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절망 이기는 창조적 슬기가 한민족 DN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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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60년은 위대한 역전극의 역사입니다. 전국 어디를 파 봐도 6·25 전쟁 때 전세계에서 달려온 젊은이들의 피가 고인 땅, 그 무서운 절망의 땅에서 불과 30여 년 만에 전세계 젊은이들의 축제인 올림픽을 만들어냈습니다. 유례가 없는 대역전극입니다. 외환위기의 벼랑 끝에서 너나 할 것 없이 금반지를 내놓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태안의 기름 바다를 헤집고 절망을 걷어냈습니다. 불행을 희망으로,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낸 여러분이 바로 이 대역전극의 주인공, 건국 60년의 영웅들입니다.”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 석좌교수(전 문화부 장관, 중앙일보 고문)의 목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이 교수는 14일 오후 8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정원에서 ‘문명사적으로 본 한국의 이상’이란 주제로 야외 공개강연을 했다. 국무총리실 소속 ‘건국 60년 기념사업단’ 주관으로 열린 ‘건국 60년, 60일 연속강연: 역사, 미래와 만나다’의 개막 강연이었다.

주최 측이 마련한 270석의 간이의자가 다 찼다. 세종문화회관 계단 등 행사장 주변 곳곳에도 삼삼오오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진지한 분위기 속에 웃음과 박수도 터져 나왔다. 이 교수는 “나이 일흔이 훨씬 넘도록 ‘길바닥’에서 강연해 보긴 처음”이라는 농담으로 시민을 위한 공개강좌를 시작했다.

◇더 먼 미래를 내다보는 민족=이날 강연에서 이 교수는 “순우리말에 어제·오늘은 있는데 ‘내일(來日)’이란 말만 한자어다. 우리는 ‘내일이 없는 민족’이란 말인가”라며 화두를 던졌다. 함포 사격으로 한 나라를 제압하거나 드넓은 대륙을 호령하는 대국의 국민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했던 젊은 날도 있었다는 고백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내일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없지만 모레라는 말, 글피·그글피라는 말까지 우리말은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을 이어갔다. 이 교수는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내는 창조적 슬기가 우리 민족의 DNA”라고 설명했다. 지난 60년간 ‘내일’보다 더 먼 미래를 준비했기에 단기간에 세계가 놀랄 만한 산업과 문명을 일궈냈다는 것이다.

◇걷고 뛰었던 60년…이제는 날아야 할 때=이 교수는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과를 강조했다. 이념의 대립, 인종·계급의 장벽 등 인류 앞에 놓인 숱한 장애물을 헤치고 ‘벽을 넘어서’ 나아가는 모습을 한국인이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올림픽 20년 뒤에야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을 예로 들며 오랜 역사의 한·중 관계를 역전시킨 자랑스런 현대사의 성취를 이어가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뛰고 달리며 일궈낸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라면, 이젠 날지 않으면 미래를 맞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강연 뒤엔 시민들의 질의도 있었다. 우형주(태릉초 5)군은 “갈매기 조너선처럼 날아오르라고 했는데, 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라고 질문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이 교수는 “이렇게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지적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라. 글로벌 스탠더드에 눈높이를 맞춰 세계와 경쟁하라”라고 답변했다.

일본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 교수는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몰고 가려는 일본의 노림수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며 “한국의 독도 영유를 기정사실화하며 차분히 대응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국가인 한국이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을 끌어안고 잘 활용할 지혜를 발휘할 것을 주문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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