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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장터, 남대문시장처럼 관광상품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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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재래시장이 죽어가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서민경제의 구심 역할을 하던 재래시장이 최근 대형 마트와 인터넷 쇼핑몰 등의 등장으로 급속히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물론 재래시장 위축이 한두 가지 문제에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주차시설 부족, 불친절, 비위생적 환경, 상인들의 서비스 정신 결여 등 내적 요인뿐 아니라 편리성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 현대식 대형 마트의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 상거래 방식의 변화 등 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재래시장 활성화 해법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국의 수많은 재래시장을 자연 도태되도록 방치할 수만은 없다. 재래시장은 아직도 상당수 서민의 생활터전이며 무시할 수 없는 지방경제의 젖줄이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러한 사실을 감안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재래시장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청이 재래시장 살리기에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들도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예산 사용 실태를 들여다보면 정부는 아직도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원예산 대부분이 비 가림 시설이나 주차장 확보 등 하드웨어 구축에 투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드웨어 정비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회생책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바로 재래시장을 상품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재래시장과 관련된 제반 이슈들을 관광 상품화하는 것이다. 해마다 수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찾고 있지만 ‘볼거리 기근이 심하다’고 관광업계 종사자들은 하소연한다. 자금성을 본 외국인 관광객에게 경복궁을 아무리 잘 설명해도 관심 끌기엔 한계가 있다. 자연경관도 마찬가지다. 그럼 우리나라에 외국인들의 감탄을 자아낼 만한 관광거리가 없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의 역사와 삶 자체야 말로 가장 좋은 관광거리다. 그것들을 가장 이른 시간에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장터다. 재래시장을 상품화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시장이나 장터가 훌륭한 관광자원 또는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서울의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 이태원 등이 관광특구로 지정된 사례에서도 잘 입증되고 있다. 시장이 관광지로 각광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관광객들이 그곳에서 독특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바로 시장을 통해 역사를 배우는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침체하고 있는 재래시장을 따뜻한 정취와 북적이는 흥이 있는 문화체험 공간으로 활성화하는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고무적인 일이다. 지방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전 중앙시장은 곳곳에 설치미술품을 전시해 냄새 나고 불결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던 재래시장을 매력적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으며, 안양 석수시장에서는 빈 가게를 상설극장·공연장·전시장·창작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유가로 인해 서민의 주름살이 늘어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방 중소도시의 경기는 IMF 때보다 더 심하다는 여론이 높다. 지방 중소도시의 서민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재래시장의 활성화는 시급하다. 

지진호 건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