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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달을 무서워하는 네살 외손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외할머니가 되면 가끔 손자 손녀를 데리고 자는 일이 생긴다.
그날밤도 『이제 자야지.
자,불 끌까?』했다.
그런데 민희가 『근데 함무니,문 잠갔어?』하고 물었다.내심 네살짜리가 대문 단속까지 하는구나 기특해하며 『그럼,걱정마세요.자,예쁜아기 낸내 합시다』하고 재웠다.
며칠후까지 외손녀의 재롱스런 말이 귀에 삼삼하던 차에 에미와전화를 하게 됐다.
『참 에미야,민선이가 도둑 단속도 하더라.자자고 하니까 할머니 대문 잠갔느냐고 서너차례나 묻지 않겠니?』 『엄마,걔 달 무지 무서워하쟎아요.』 『?』 그러고보니 작년 가을 보름달이 훤히 떴을 때 우연히 창밖을 보던 아가가 황급히 수선을 떨며 『엄마,저 달 들어오면 나 무서워』하면서 창문마다 닫으라고 울고불고하는 바람에 커튼까지 쳐가며 가슴에 파고드는 아가를 안고어른들이 웃었다 는 이야기가 떠올랐다.그 때는 함께 웃고 지났는데 이렇게 확실히 달을 무서워하는 아가를 보니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새삼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TV나 비디오에 나오는 우주전쟁,환한 둥근 물체가 하늘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지구를 향해 돌진해오고,번쩍번쩍 별들이부수고 도망가고….아가는 어느덧 달을 토끼가 방아찧는 동화의 달이 아니라 나를 향해 돌진할지도 모른다는 무서 운 적의 별로인식하고 있는 것이다.이제 겨우 만 네살인데….
이성화〈서울종로구통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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