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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탕쿠르 구출 대사 → 외교장관 → 사르코지 ‘급행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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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국민이 해외에서 피랍되거나 피살되는 사태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주요 국가에선 이러한 돌발적인 위기 사태에 대비해 철저한 대책을 세워 놓는 한편 발생 시에는 신속하게 대처하는 위기관리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미국=국무부에 따르면 1년에 미국 시민 6000여 명이 해외에서 사망한다. 그중 다수는 장기 체류자가 질병 등으로 사망하는 것이지만 테러 등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이유로 사망할 경우 ‘현지 영사관·대사관-국무부-백악관 안보보좌관-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신속한 보고 체계를 갖추고 있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11일(현지시간) “금강산 사건의 피해자가 미국인이었다면 신원과 경위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더라도 일단 ‘미국 시민이 사망했다’는 1보를 현지에서 국무부를 거쳐 백악관에 바로 알리게 돼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에선 경위 파악을 이유로 대통령에게 늦게 보고했다고 하는데 위기대응시스템이 체계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 국무부는 해외의 자국민 보호를 위해 영사국에 해외시민서비스(OCS)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OCS 밑에는 ‘미국 시민 서비스 및 위기관리국(ACS)’ 등 3개 국이 있다. ACS는 세계 전역을 6개로 나눠 미국 시민의 사망·체포·실종·의료·재정·복지지원 등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시민이 사망하면 신속한 보고, 사인 조사, 유가족에게 편의 제공 등의 일을 한다. 또 미국 시민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여행 가능 국가, 여행 시 주의 사항, 비상상황 시 대처 방법 등을 인터넷 등으로 자세히 알려 주고 있다.

◇프랑스=이달 초 외교부에 ‘위기대응센터’를 열었다. 50여만 명의 해외 체류자와 관광객 등 자국민 보호가 가장 큰 임무다. 위기대응센터를 지휘하는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교장관은 “해외 위험 지역에 파견된 국민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다”며 “위기대응센터는 최적의 환경에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설치된 태스크 포스”라고 설명했다. 이 센터는 신속함을 생명으로 하기 때문에 복잡한 보고 절차를 생략한다. 긴급 상황 때는 현장에서 접수된 영상과 자료를 바로 장관을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돼 있다.

최근 콜롬비아 반군에 억류돼 있던 프랑스 국적 보유자 잉그리드 베탕쿠르가 풀려났을 때 이러한 신속 보고 시스템은 진가를 발휘했다. 당시 상황을 주 콜롬비아 대사가 직접 외교장관에게 보고했고 장관은 곧바로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전화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덕분에 프랑스 정부가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한밤중에 가족까지 불러 기자회견을 한 것이다.

◇기타=홍콩은 해외에서 홍콩인이 사망하거나 조난당했을 경우 이민국과 중국 외교부를 통해 즉각 보고하고 신속한 사태 해결에 나선다. 이 때문에 중국 쓰촨(四川)성 지진 당시 행정장관이 국가위기 차원에서 모든 국장(장관)을 소집해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신속한 구호활동 방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 중국 연락판공실을 통해 홍콩인 피해 상황을 알려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일본에선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총리에게 직보하는 ‘액션 플랜’이 갖춰져 있다.

중국도 쓰촨 대지진 발생 시 신속한 대응 체제를 가동했다. 지진 발생 두 시간 후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는 베이징의 공군 비행장에 도착해 곧바로 지진 현장으로 날아가면서 항공기 안에서 지진 구조활동을 지시했다.

워싱턴·파리·베이징·홍콩= 이상일·전진배·장세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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