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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나더러 자질 없다 하는데, 기준이 뭐죠?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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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08면

10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양정례 의원이 국회의장 선거 투표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위). 11일 오전 친박연대 의원회의에 참석 중인 양 의원(아래 왼쪽). 양 의원이 지난달 19일 오전 공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아래 오른쪽). 뉴시스·연합뉴스

9일 오전 10시30분. 친박연대 당사 기자회견실에 초선 의원들이 들어왔다. 축산 농가, 화물협회 등 ‘민생 투어’를 한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였다. 1m74cm의 장신에 유독 젊은 양정례 의원은 제일 구석에 서 있어도 눈에 띄었다. 미스코리아 후보들처럼 꼿꼿하게 등을 편 자세로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의원회관 ‘로열실’에 입주한 최연소 양정례 의원

발표가 끝난 뒤에야 다소 긴장이 풀린 듯했다. 기자가 인사를 건네자 “근데 언니, 인상이 너~무 좋으시다”며 웃기도 했다.

10일은 국회의장을 뽑는 날이었다. 양 의원은 오전 9시30분 서초동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뒤 재판부로부터 약 2시간의 궐석을 허락받고 서둘러 국회로 향했다. 20여 분 만에 도착했다. 시작 5분 전이었다.

“양정례 의원.” 조순형 임시의장의 호명에 양 의원도 투표를 했지만, 자기 손으로 뽑은 첫 국회의장 선거 결과는 보지 못했다. 서둘러 서초동 법정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30분 그는 다시 피고인 석에 앉아 있었다. “양정례는…양정례가…” 검사는 피고인인 그의 이름 뒤에 직함도 존칭도 붙이지 않았다. 점심은 어머니와 함께 법원 구내 식당에서 카레라이스를 먹었다.

오후 2시 재판이 다시 시작됐다. 검찰 측 증인이 “(양 의원 모녀가)돈을 내지 않았다면 비례대표 1번이 됐을 리 없다” “(양 의원이)대학 교수도 아니고 국가 사회에 공헌을 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비례대표 1번은 상징적인 존재인데 대한민국이 아무리 썩고 또 썩었지만…”하고 목소리도 높였다. 양 의원이 고개를 들고 증인을 한참 쳐다보았다. 양 의원이 17억원을 공천 대가로 건넸다는 검찰 측 주장과 대가성이 없는 합법적인 차용금으로 이미 이자와 함께 갚았다는 변호인 측 주장이 맞서면서 오후 7시쯤에야 재판이 끝났다. 양 의원에게 일괄 복당에 대한 소감을 묻자 “재판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했다. 저녁식사를 하러 가서야 “(난 국회의원)자질이 없잖아요”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양 의원은 6월부터 매주 목요일을 이렇게 피고인석에서 보냈다.

11일 오전 9시 친박연대 의원회의에 양 의원이 5분가량 늦었다. 허리가 아파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최근 두어 달 스트레스로 체중이 늘고, 법정에 10시간씩 앉아 있느라 무리가 간 듯하다고 했다. 오후 2시엔 18대 국회 개원식이 열렸다. 개원 연설을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에 왔다. 양 의원은 개원식에 참석한 뒤 다시 허리에 침을 맞으러 갔다. 오후 6시쯤 의원회관 사무실로 돌아온 그를 만났다.

-국회가 드디어 개원을 했는데요.
“재미있게 해보려고 했는데…지금은 좀 정신이 없어서.”
양 의원은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며, 본인이 무슨 잘못을 했거나 문제가 있다는 말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분위기를 바꾸려고 실없는 질문을 했다.

-국회의장은 누구 찍었어요.
“어머! 뻔한 것 아니에요? (장난스럽게 웃으며) 양정례라고 썼어요. 한 표 나왔잖아요. 하하.”

-최연소 의원으로서 포부를 말한다면.
“전에는 굉장히 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지난번에 ‘민생 투어’ 하러 현장에 가보니 너무 심하더라고요. 지금은 거창하게 말하자면, 민생 안정?”

-민생 안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요.
“지금 제17대 때 통과 안 됐던 법안들을 보고 있어요. 주로 중소기업에 부과되는 세금에 관한 거예요. 예를 들어 지방세는 분납이 가능한데 국세는 현금으로 일시에 납부해야 되거든요. 제가 어머니 회사에서 일해봤기 때문에 중소기업 힘든 걸 잘 알아요. 그래서 상임위도 재경위로 신청했고요.”
양 의원은 재경위를 1지망, 정무위를 2지망으로 신청했다. 그가 별다른 사회 경력이 없기 때문에 학부·대학원 전공(안양대 관광경영학, 연세대 법무대학원)에 맞췄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이규택 친박연대 공동대표는 “얼마 전 양 의원이 전화로 상임위도 상의했고, 에너지 문제를 물어보면서 서머타임제 법안 제출에 관심을 두더라”고 밝혔다.

-공천 헌금 논란에 대해 할 말이 있나요.
“재판 중인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재판 결과가 모든 걸 말해줄 겁니다.”

-자질 논란이 어제 법정에서도 계속 나왔습니다만.
“국회의원 되는데 무슨 자격 기준이 있나요? 나이가 젊다 보니 경력이 적을 수밖에 없는 거고. 꼭 무슨 장(長)을 하고 그래야 되는 건가요?”

-친박연대 의원도 “왜 양정례가 됐는지 들은 적도 물어본 적도 없다. 아직도 모르겠다”고 말하던데요.
“자꾸 자질이 없다고 하시는데, 기준이 뭔지를 말해야죠. 국회의원 기준? 기준…그 기준이 웃기는 것 같아요. 다른 국회의원은 이만큼인데 너는 이만큼 됐느냐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국회의원의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 섬기는 자세? 그런 거요.”

-경력이 없지만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젊은이는 양 의원 말고도 많을 것 같은데요.
“제가 앞으로 교두보가 돼 다른 분들도 정치에 입문하시면 되잖아요.”
친박연대의 한 의원은 “한나라당을 위해 일한 적도 없는 사람이 어부지리로 들어간다”고 불만을 말하기도 했다.

-양 의원은 원래 한나라당 당원이 아니었죠? 입당할 건가요.
“정치적인 것은 잘 모르겠어요. 입당·복당·일괄복당 그런 건 잘 몰라요. 지금은 자료 읽어보고 고치고…할 수 있는 것만 찾아 하기도 바쁘던데요?”

-당적이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요.
“예. 친박·한나라당 다 떠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거예요.”

-비례대표는 당을 보고 국민이 뽑아준 건데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의원회관 8층을 배정받은 양 의원의 방에선 한강과 국회 잔디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망이 좋아 국회 사람들에게 ‘로열’이라고 불리는 위치다. “뭐 잘한 게 있어서 받았나 보지”하고 비꼬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공천비리 등으로)시끄러우니까 좀 떨어뜨려 놓다 보니 그렇게 됐을 것”이라고 말하는 당 관계자도 있었다. 의원실 배정은 국회사무처에서 각 당에 1차 배분하고, 당에서 최종 결정한다. ‘로열실 배정 논란’을 묻자 “처음 들어보는 일”이라며 “너무들 예민하신 것 같다. 방? 회관? 그런 게 중요한가?” 반문한다.

그는 지난달 20일 900여만원의 세비를 처음으로 받았다. 국회가 쉬고 있다는 이유로 일부 의원은 세비를 반납하기도 했다. “저도 (세비 반납을)고려해봤지만 안 하기로 했어요. 지금은 이유를 말씀드릴 수 없네요.”

지난해 10월 변호사와 결혼한 양 의원에게 2세 계획을 물었다. 현역 여성의원이 출산을 하는 기록이 생길지 모른다. “원래 올해 가지려고 했는데 국회의원이 됐기 때문에(업무 수행을 위해 출산을 미룰 것인지) 남편과 의논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양 의원은 제18대 국회 임기를 끝까지 채울 수 있을까. 8월이면 1심 결과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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