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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經總회장 14년만에 사임하는 이동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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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동찬(李東燦.75)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이달말 14년 동안 맡아 온 경총회장직을 사임한다.이에 앞서 지난달 아들인 이웅열(李雄烈)씨에게 코오롱그룹 회장직을 물려줌으로써 49년간의기업경영에서도 손을 뗐다.또 85년 이후 10년 째 맡아 왔던골프협회 회장도 지난달 그만뒀다.최근 한 달 사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인생을 정리해 나가는 모습이다.본지 박병석(朴炳錫)경제2부장이 14일 오후 서울 무교동 코오롱빌딩 李회장의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원로경영인으로서의 소회(所懷)를 들어 봤다.
-올 들어 갑자기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제 갈 때가 됐으니 준비해야죠.저는 매사에 꽉 차는 것보다는 조금 모자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주위에서 내년이면 경영인으로 50년이 되니 그룹회장직을 내년에 물려주면 어떻겠냐는 말들도 했었습니다.그러나 50년 을 꽉 채우는 것보다 조금 모자라는 시점에서 물러나는 게 역시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또 한가지 이유는 사람이 한 자리에 너무 오래있으면 제 아무리 훌륭한 경우라도 매너리즘에 빠지게 됩니다.신선하고 합리적인 생각을 하기 힘들지요.내 자리를 비워 줘야 훌륭한후진들이 등용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변에는 李회장께서 경총회장을 한번 더 연임해 달라는 요청도 있는 것 같은데요.
『연임할 생각 전혀 없습니다.14년째 경총회장을 해 오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져 매사에 용기와 의욕이 예전만 못합니다.이달28일 총회에서 분명히 물러날 겁니다.』 -李회장께서 LG그룹의 구본무(具本茂)회장을 차기회장으로 꼽고 계시는 것으로 듣고있습니다만.
『사실입니다.자격면에서 보나 아버지인 구자경(具滋暻)회장과 저와의 특수관계에서 보나 구본무회장이 경총회장을 맡아 주면 좋겠습니다.계속 권유하고 있습니다.』 -금년 노사문제는 특히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올해는 총선이 있고 비자금사건의 영향도 만만찮을 텐데요.
『그렇습니다.올해 근로자단체들이 12%가 넘는 임금인상률을 요구하고 나온 데 비해 우리 경총은 4.8~5%선을 타협선으로제시하고 있어 마찰이 클 것으로 판단됩니다.
현재 정부는 6%대에서 노사가 올해 임금협상을 타결지어 줄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경총도 이같은 정부의 뜻을 받아들여 임금인상률을 6%대 수준으로 상향조정해 노조측에 새로 제시하고 협상을 유도할 계획입니다.』 -지난 14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사(使)측 대표로 노사협상을 벌여 오셨습니다.협상에 임하는 특별한 마음가짐이라도 있었습니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자세로 항상 협상에 임했습니다.어떤 인물이 차기 경총회장을 맡든 바로 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노사관계의 기본철학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노동조합이 필요없는 회사를 만들도록 경영자와 근로자가 서로 도와 나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이 때문에 저는 勞.
使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해 오래전부터 勞.社라는 말을 대신 사용하고 있습니다.』 -노동계에 하고 싶은 말은 없으십니까. 『국익 전체를 생각하는 차원에서 노조운동을 해주었으면하는 바람뿐입니다.세계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생산에 필요한 요소비용이 너무 비싸 대기업마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산업공동화(空洞化)마저 나타날 우려가 있습니다.폴란드의바웬사 같은 위대한 노조지도자가 우리나라에도 나와 주기를 기대합니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稅 -비자금사건으로 국민들이보는 대기업 이미지가 많이 실추됐는데요.
『비자금은 과거정권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세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런 비자금을 대가로 해서 일부 대그룹들은 큰 공사를 불하받을 수 있었고 근로자들도 기업성장의 이윤을 함께 누린 것이니 어떤 의미에서는 기업과 근로자가 모두 비자금의 덕을 봤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너무 기업인들만 나무라는 시각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5,6공때 15대그룹까지는 대통령이 직접 관리했습니다.물론 돈을 받은 대가로 일부 그룹에 큰 공사 등 이권을 보장해 주었지요. ***文民출범 이후 풍토 개선 그러나 문민정부 출범 이후 그런 식의 정치비자금 수수는 사라졌습니다.
물론 정계의 친지들에 대한 자발적인 정치자금 지원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올봄 총선 때도 이런 정치자금 수수는 계속될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강제적이 아니고 규모도 작아졌다는 얘기지요.』 -일부 대그룹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사외이사제를 어떻게보십니까.
『사람의 문제이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지금도 비상근이사제도가 있지 않습니까.이게 바로 사외이사이지 무엇입니까.』 -아들인 이웅렬회장에 대한 평가를 하신다면.
『저보다 술.친구등 사교적인 면에서 월등합니다.또 신세대 사고방식을 갖추고 있지요.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사람을 평가하는데 너무 성급하다는 단점도 있지요.때문에 시간날때마다 사람을 신중히 쓰도록 충고하고 있습니다 .』 -국내 재계에 4세 회장의 탄생이 가능하리라고 보십니까.
『상당히 어렵다고 봅니다.우선 지분문제가 그렇습니다.앞으로 4세회장이 출현하려면 20년은 더 있어야 할터인데 그동안 그룹계열사들이 끝없이 증자를 할테고 사주(社主)의 지분율은 떨어질수밖에 없습니다.따라서 웬만큼 똑똑해서는 창업 자의 4세가 회장직을 이어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분에 넘치도록 성공한 삶 -스스로 지나 온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제 자신은 분에 넘칠 정도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재계 인물로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또 체육인으로 청룡장을 받았으며 개인적으로는 국민훈장무궁화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저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의 끝없는 도움으로 가능했던 영광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생을 어떻게 보내실 계획입니까.
『개인차원의 사회봉사활동을 많이 할 생각이며 나머지 시간은 취미활동으로 보낼 작정입니다.저는 시간이 많이 드는 취미가 많습니다.등산.낚시.바둑.골프.그림등 다양한 편이지요(李회장은 기자를 집무실 옆 화실로 인도하며 자신이 직접 그 린 그림들을일일이 소개했다).』 [정리=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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